숨 쉴 때마다 입안에 모래가 들어온 것처럼 서걱거렸다. 가문 봄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한 시간이 넘도록 물을 뿌린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물을 준 게 맞는 건지 헛갈릴 정도로 멀끔한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건들거리고 있는 앵초 무더기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고개를 들고 있는 잡초들을 뽑을 요량이었다.겨울을 나는 동안 말라버린 가지들을 자르고 양지바른 곳에 서둘러 자리 잡은 잡초들을 뽑다 보면 이유 없이 불안하고 허둥대던 마음이 진정될지도 몰랐다.
앵초 옆, 작약이 그해의 첫 잎을 밀어 올리느라 용을 썼는지 흙덩어리가 살짝 들려 있는 게 보였다. 뿌리가 드러날까 싶어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렸다. 물기를 머금어 서늘한 흙덩이를 가볍게 누르는 느낌이 좋았다. 그래 그렇지 뭐. 걱정한다고 없는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서두른다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도 아닌데 별 수 있나. 매일 하던 대로 마당에 물 주고, 풀 좀 뽑다가 끼니때가 돌아오면 몇 술 뜨는 거지. 그러면 또 하루가 가겠지. 듣는 사람도 없는데 두서없이 중얼거리다 보니 은근히 속이 풀렸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질이는 게 좋아서 그대로 앉아만 있고 싶었다. 봄이 오는 마당의 화단을 토닥토닥 손바닥으로 두드리면서 그래 집이 좋아, 혼자 있는 게 좋아, 지금처럼 흙바닥에 주저앉아 새싹들을 바라보는 게 정말 좋아, 누가 묻지도 않는데 계속 혼잣말을 했다. 그 일은 바로 그때 일어났다.
내가 앉아있던 곳은 마당에서 봄이 제일 먼저 찾아오는 곳, 소나무 그늘에 놓인 넓적 바위 부근이었다. 봄이 올 즈음에 마당에 나가면 저절로 발길이 향하는 곳이기도 했다. 햇볕에 달궈진 바위로부터 전해지는 온기가 나른해서일까? 졸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뭔가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하얗고 작은 것이 나풀거리며 지나간 느낌. 나비인가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직 나비가 나올 때는 아니었다. 맨 종아리에 닿는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쪼그려 앉은 탓에 오금이 저려왔지만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지럼증을 느낀 건 바로 그때였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나 싶어 고개를 드는데 내 앞의 흙무더기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쪼그린 채 햇볕 아래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현기증이 생긴 건가 머리를 흔드는 순간에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작지만 두툼한 흙무덤이 솟아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느리긴 했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흙을 뒤집어쓴 그것은 놀랍게도 살아있었다. 조금씩 내 쪽으로 움직였다. 두꺼비였다. 실제로 맞닥뜨린 건 처음이었지만 분명했다. 개구리를 닮은 모습, 몸에 비해 커다란 머리, 흙빛의 몸, 기이한 금빛 눈을 뒤룩거리며 흙 속에서 나타나는 동물이라면 두꺼비가 틀림없었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은 채 엉금엉금 뒤로 물러난 다음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났다. 빨리 움직였다간 놀란 두꺼비가 덤벼들지도 몰랐다. 두꺼비에게서 어느 정도 멀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후다닥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꺼비는 화단의 흙 밑에서 겨울잠을 잤을 것이다. 봄이 가까워지자 뭔가가 두꺼비에게 이제 깨어나 밖으로 나가야 할 때라고 일러주었을 것이고, 잠에서 깬 두꺼비가 흙을 밀어 올리고 부신 눈을 끔벅이며 나온다는 게 하필 내가 그 앞에 앉아있던 때였던 것이다. 나만큼 두꺼비도 놀랐을 게 분명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 맹렬한 허기를 느끼며 어렵사리 흙덩이를 밀어 올리고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느닷없이 소리를 질러가며 뒹구는 여자를 맞닥뜨렸으니 참 운도 없는 두꺼비였다. 혼비백산한 채 집안으로 쫓겨 들어와서 조금 진정이 되자 언젠가 읽었던 두꺼비 이야기가 생각났다. 가을부터 땅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두꺼비는 가장 가까운 물웅덩이를 찾아가 작은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허기를 채운 후에 짝짓기에 돌입한다고 하던데 이 두꺼비는 어쩌자고 이런 산꼭대기 메마른 꽃밭 아래서 겨울을 났을까? 산등성이로 가는 길에 작은 도랑이 있기는 하지만 거기 먹을 만한 벌레들이 있을지, 무엇보다 짝짓기를 할 두꺼비를 만날 수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날은 종일 집안에서지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도 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급하지도 않은 잔일들을 찾아 종종거리며 오전을 다 보내고 나서야 ‘그래도 역시 마당에는 물이 필요하니까 두꺼비 정도야’ 하는 마음으로 장화를 신었다. 바람꽃은 하루사이에 활짝 피어있었다. 가지마다 구슬처럼 매달린 풀또기의 꽃망울도 부풀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마당을 한 바퀴 돌며 물을 주는 동안 두꺼비는 보이지 않았다. 튤립 싹이 몇 개나 나왔나 헤아리는 동안에도, 찔레나무의 죽어버린 가지들을 자르는 동안에도 두꺼비는 안보였다. 그날 오후 늦게 호스 정리를 하러 집 뒤로 돌아갔을 때 두꺼비를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궁굼했던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두꺼비는 보이지 않았을 뿐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며칠 동안 집 안팎 여기저기서 두꺼비와 마주쳤다. 산으로 열린 쪽문 앞에서, 주차장 바닥에서, 조팝나무 아래에도 있었다. 대부분은 움직이지 않았고 가끔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두꺼비는 마치 출발선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육상 선수처럼 보였다. 완벽하게 정지한 상태로 출발신호를 기다리며 온몸의 세포가 달리고 싶은 욕망으로 부풀어 오른 모습, 그게 당시의 두꺼비에게서 내가 받은 인상이었다. 실제로 두꺼비가 움직이는 걸 본 적은 없었다. 맞닥뜨리고 보면 전과 다른 장소여서 두꺼비가 이동했다는 걸 알았다. 그건 마치 꽃이 피는 것 같았다. 자고 일어났을 때,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오후가 되었을 때, 잠시 한 눈을 팔았을 때, 눈치채지 못한 순간에 꽃들은 피었다. 멈춘 것처럼 보여도 꽃은 피고 두꺼비는 어딘가를 향한다.더 이상 무섭지도 징그럽지도 않았다. 멈춘 듯 보였지만 끊임없이 어딘가를 향하던 두꺼비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집앞 골목 끄트머리에서였다. 두꺼비는 가버렸고 봄은 농익었다. 잊기 좋은 계절이었다.
여러 해가 지났다. 겨울잠을 자듯 엎드려 있던 때도 있었고 등에 날개가 돋은 듯 간지러운 날들도 있었다. 어느 적막한 동굴에라도 숨어 버리고 싶었던 때는 오래전에 만났던 두꺼비가 생각났다. 불친절한 세상에 낙담하면 잠에서 깨자마자 혼비백산한 여자와 요란하게 맞닥뜨린 두꺼비의 처음을 떠올렸다. 의심하지 않는 눈동자와 서두르지 않던 두꺼비의 품새를 떠올리면 안심이 되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바위 아래 흙무더기가 혹시 움직이는지 살피는 버릇도 생겼다. 두꺼비를 다시 만날까 해서다. 침잠과 모색의 시간을 지나면 길이 보인다는 걸, 꺾이지 않는 마음만 있으면 언젠가는 길 끝에 가 닿을수 있다는 걸 가르쳐준 두꺼비가 지금은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