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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an 03. 2024

구근을 기르면 새해는 덤입니다

        

    동생이 보낸 택배 상자가 예상보다 묵직했다. 상자를 여니 야무지게 묶인 꾸러미가 올망졸망하다. 이번에도 보낸다는 물건들 외에 뭔가가 더 들어있다. 그중 눈에 띄는 건 택배 상자 중앙에 놓인 자그마한 화분 세 개였다. 화분에는 보라색 히아신스 구근이 심겨 있었다. 흙이 쏟아지지 않도록 그리고 막 나오기 시작한 새싹들의 숨쉬기를 방해하지 않도록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마음이 보여 슬며시 웃음이 났다.   

   

   12월 중순에 접어들면 구근 수경재배를 해볼까 생각하게 된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구근을 구해서 뿌리만 물에 잠길 수 있도록 적당한 크기의 용기를 찾아 앉힌 후 물을 갈아주며 밝은 곳에 놓아두기만 하면 된다. 마당에 쌓인 낙엽들이 심술궂은 바람에 쫓겨 다니는 겨울 풍경대신 집안에서 생생한 초록 잎들을 볼 수 있으니 좀 좋은가 싶은 것이다. 꽃이 피고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조바심에 몸이 빨라진다. 그렇게 구근을 들이고 난 처음 며칠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구근을 살핀다. 새싹이 얼마나 나왔는지, 새로 나온 잎은 없는지, 혹시 꽃대가 나올 기미가 보이는지 기대하며 기다린다. 드디어 때가 되어 꽃이 피면 향기가 온 집안을 채운다. 더러는 그 사이에 새해가 오기도 한다. 해마다 거르지 않다 보니 이제 구근 기르기는 새해를 맞이하는 의례가 되었다. 거리의 꽃집 유리창에 구근 팝니다, 란 종이가 붙어있는 걸 보게 되면 곧 새해가 올 거란 각성이 뒤따랐다. 새 달력을 걸고 새 수첩에 기억해야 할 날들을 표시해야 할 때였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이왕이면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와 달라고 부탁한다. 어린 왕자의 방문이 하나의 ‘의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린 왕자가 의례가 무엇이냐고 묻자 여우는 의례란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어떤 일이 의례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일이 여러 번 반복되어야 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이 일어나고 또 그걸 기억하게 되면 우리는 그 시간에 가까워질 때마다 곧 일어날 어떤 일을 예상할 수 있다. 삶에 질서가 생기고 예측이 가능해진다. 어린 왕자와 여우가 친구가 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 일을 반복하면서 그 일을 의례로 만든다. 형태가 없는 삶에 벽체를 세우고 지붕을 얹는 일이 바로 의례가 하는 일이다. 꽃집에서 구근을 집어 드는 순간, 다가올 날들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날들이 되는 것이다.  

     

   반복의 힘은 작은 일들에서 온다. 이를테면 히아신스 구근을 기르는 일, 그 일로 나는 식물과 교류하는 법을 배웠다. 잘 맞는 크기의 유리병을 고르고, 물을 갈아주고, 볕이 드는 곳을 따라 유리병을 옮겨가며 새싹이 나기를 기다린다. 내가 지켜보는 동안 구근은 새싹을 밀어 올리고 꽃대를 만들고 향기를 모은다. 나와 구근 사이에 오간 시간은 반짝이는 꽃잎과 폭죽처럼 터지는 향기로 응축된다. 매일의 물 주기는, 그 작은 반복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지만 내게 꽃과 향기를 가져다준다. 더러 새해와 같이 오는 그것들을 나는 사랑한다.     

 

   사실 최근 몇 년 동안은 마당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놓고 구근을 묻으며 계절의 안부를 물을 여유가 없었다. 바이러스와 기후위기로 병든 지구만큼 나도 앓고 있었다. 일상이 어긋나고 있었다. 이음새가 헐거워진 가구처럼 삐걱거리다가 기울어져 균형을 잃은 날들이 지나갔다. 신기한 건 그러는 동안에도 해마다 어디에선가 농담처럼 구근이 몇 개씩 도착했다는 사실이다. 생각지도 못한 구근을 받아 들고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는 일, 나는 적당한 유리병을 찾아 구근을 올려두고 물빛이 탁해지지 않도록 살폈다. 몸을 움직이니 정신도 움직였다. 돌봐야 할 구근들이 없었다면 그동안 나의 새해는 핸드폰 화면에 표시되는 숫자로만 찾아왔을 것이다.   

    

   새해의 첫날을 여느 날과 다르게 만드는 것도 바로 새해를 맞이하는 의례 때문일 것이다. 흩어져 있던 가족이 모여 떡국을 먹고 한 해의 건강과 행운을 나누는 의례가 없었다면 새해 아침은 그 전날 혹은 다음날의 아침과 다르지 않다. 오래전에 사람들은 시간을 잘게 쪼개서 시계와 달력을 만들었다. 같은 길이로 쪼개졌을지언정 어떤 시간은 다른 시간과 다르고 어떤 날은 다른 날과 다르다.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은 매해 되풀이하는 어떤 일이며 그 일에 관한 기억일 것이다. 새해에 관한 기억이라면 평소보다 붐볐던 시장과 분주하고 소란했던 부엌, 끊임없이 드나들던 사람들, 그리고 잠들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어린 내가 있다. 따뜻한 음식, 새 옷과 덕담을 건네며 웃는 얼굴들이 있었다. 그 기억이 지금의 시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구근 한 개를 손안에 쥐고 나는 다시 시작한다. 반복이 의례를 만들고 그 의례를 되풀이하면서 일상에 매듭을 지어 균형을 되찾는다. 기억이 내 몸을 나도 모르게 움직이게 한다.





우리문화 2024년 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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