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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ul 04. 2022

새삼스럽게 읽는 기쁨

버지니아 울프와 조지 기싱

   [보통의 독자 2]에서 '조지 기싱'을 읽을 때도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페이지마다 밑줄을 그은 문장들이 맨문장보다 많았던 에세이였다. 그가 개인적 고통을 이용하여 독자의 공감과 호기심을 작가 자신에게 묶어두는 것이 얼마나 형편없는 일이냐고 했을 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린 듯했다. 끊임없이 독자의 공감을 요구하여 개인적인 고찰에만 머무를 때 작가의 상상력은 더이상 자유로울 수 없다는 문장을 읽을 때는 내 키가 한 뼘 정도나 자란 느낌에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어느 보통 독자의 책 읽기]에서 '조기 기싱'을 다시 발견했을 때 ㅡ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서 '조지 기싱'이 두 편의 글로 되어 있고 그 첫 번째가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수기'라는 걸 알았을 때 ㅡ 동시에 기쁘고 슬퍼서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모른  다. 조지 기싱을 그토록 자주 언급하곤 했던 버지니아 울프가 예의 그 '수기'를 읽지 않았을 리 없건만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내 둔감함에 슬펐고, 내가 밑줄을 긋고 귀퉁이를 접어놓으며 남겼던 단어들을 다시 발견하며 기뻤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불완전한 한 남자가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기록한 그 글들은 특별히 뛰어나게 아름답거나 심오하지는 않지만 '진실하다'. 그에게 남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그 부분일 것이다. 약점과 결점을 가진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리지 않는 드문 재능 말이다.


   《이 글의 매력은 건실하고 담담한 데 있다. 마치 날이 저문 후 더는 소망하거나 두려워할 장래의 빛이 없을 때 비쳐 드는 잿빛 미광과도 같다. 그런데도 그 최종적인 인상은 결코 울적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보아 그토록 외적인 사치라고는 없는 삶이 그 자체로 충분할 수 있는 선물들을 발견한다는 것이 찬사를 받을 만하다. 그는 드물게 빼어난 재능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머리는 우수한 편이었고 책을 좋아했지만 오로지 그 두 가지 재능만으로 사람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적어도 그가 독립적이고 무해한 인간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버지니아 울프,  [어느 보통 독자의 책 읽기] p.135



   번역본을 비교하며 읽는 걸 즐긴다. 처음에는 재미로 그랬다. 그러다가 번역이 내게 미치는 영향력을 알게 됐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샅샅이 뒤져가며 읽게도 하지만 도중에 덮어버리고 진저리를 치게 만들기도 한다. 왜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한탄했던 적도 많았다. 모국어를 읽는 기쁨을 알면서도 욕심을 버릴 수 없었던 어리석은 자가 나였다. 읽는 동안 그 한심함을 잊게 해 준 최애리, 박명숙 두 역자에게 감사한다.


   읽다 보면 알게 된다. 무엇이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빛나게 하여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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