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이랑 실이랑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막내 이모도 함께 살았다. 솜씨가 빼어난 이모가 눈처럼 하얀 무명과 색색의 실을 가지고 자리를 잡으면 바늘을 잡은 손끝에서 이야기가 술술 풀려 나왔다. 복잡한 기호도 없고 미리 그려놓은 밑그림도 없었다. 손끝에서 꽃이 피어나고 사슴이 뛰놀고 새가 날았으며 봄볕에 겨운 아가씨들이 노래를 불렀다. 이모의 손가락이 날개를 달던 시간이 모이면 그건 베갯잇이 되고 옷커버가 되고 이불덮개도 되었다. 겨울 긴 밤 라디오 연속극에 귀를 기울이며 대바늘을 놀리면 벙어리장갑이 생기고 목도리며 양말, 스웨터가 생겼다. 그 곁에서 난 꿈을 꾸곤 했는데 이모가 결혼해서 우리 집을 떠날 때 부지런하고 야무진 손놀림과 동화 같은 시간들도 함께 떠났으니 참으로 그리운 시간이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 결혼하고 집에 있을 때 어수선한 마음을 잡기 위해 시작한 바느질. 2~3년쯤 열심히 하다가 중단했지만 그때 가지고 있던 바늘과 실, 조각 원단들을 버리지 않고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아이가 자라면서 다시 꺼냈다. 하나하나 다른 사연, 다른 시간을 간직한 조각 천들이 내게로 와서 기특하게도 잘 어울렸다. 그렇게 조각 천이 모이면 무언가가 만들어진다. 함께하는 또 다른 시간들이 켜켜이 모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면 또 하나의 동화가 생기곤 했다.
바늘만 잡으면 쏟아지던 잠도 달아나 버렸다. 아이 시험 기간에는 함께 깨어 있기 위한 방편으로, 명절을 앞두고는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한 방법으로 옷을 만들거나 조각 잇기를 하거나 뜨개질을 했다. 단숨에 완성할 때도 있지만, 몇 년 전 시작했다가 여태 끝을 보지 못한 것들도 여럿이다. 그러다 마음이 동하면 끄집어내서 다시 바늘을 잡는데 처음 마음먹은 대로 계속 이어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생각이 바뀌어 전혀 다른 용도를 가진 물건이 만들어지기도 해서 커튼이었던 것이 이불이 되기도 하고, 담요이던 것이 쿠션이 되기도 했다. 아껴두었던 천이나 털실뭉치가 눈에 밟히는 날엔 하루 만에 아이 방 커튼이 바뀌고, 테이블보와 행주가 생기고, 멋스러운 목도리가 만들어진다.
일이 많아 부담스럽거나 그게 지나쳐 외면하고 싶을 때는 다른 일을 더 만드는 버릇이 있다. 1천 개짜리 퍼즐을 꺼내놓는다거나, 책을 몇 권 산다거나, 뜨개질이나 바느질감을 뒤적이는 것처럼 일이 아니라 놀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꺼내 놓으면 무겁고 답답했던 마음에 바람이 잘 통하는 창이 생긴 것처럼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한 땀 한 땀, 한 코 한 코 잇고 엮다 보면 숨 가쁘고 단조로운 일상이 유연하고 경쾌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내 손으로 이룬 작은 성취를 눈앞에서 확인하는 재미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