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배울까?

표절의 여왕

by 라문숙


마당 귀퉁이에 플라스틱 화분 몇 개를 놔두고 순무 씨앗을 뿌렸다. 봄에 한 번 뿌려 거둔 것들은 겨된장에 절여서 이미 먹었고 이번이 두 번째니 이기작인 셈이다. 비가 계속 내려 이파리들이 상하는 것 같아서 오늘 모두 뽑았다. 나간 김에 늙어버린 오이 두개, 말랑한 가지, 향기가 일품인 깻잎들을 거두어서 들어왔다.


아침에 거둔 것들이니 오늘 다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순무만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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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를 약간만 남기고 잘 씻어서 두껍게 썬 다음에 올리브유를 두른 팬을 센 불에 올리고 순무를 올려 굽는다. 한쪽이 노릇하게 구워질 때까지 놓아 두었다가 한 번만 뒤집고 반대편은 살짝 익혀서 접시에 담고 소금과 후추로 간하면 완성이다. 처음 먹어보는 것이라 맛이 궁금했는데 아삭하면서도 부드럽고 매운맛은 없다. 미미한 달콤함이 입안에 남았다. 마지막에 간을 하는 소금과 후추의 맛이 전체 요리의 맛을 좌우할 정도로 담백한 한 접시. 거품이 좋은 차가운 맥주와 잘 어울릴 것 같았지만 맥주가 없었으므로 가벼운 스파클링 와인을 곁들였다. 순하고 깨끗한 맛이라 순무가 갑자기 열 배 정도 더 좋아졌던 순간!



남편은 얼마 전부터 상투과자 타령을 했다.상투과자를 사 달라는 게 아니고 상투과자를 만들어 달라는 것 이었는데 그는 도대체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식구들 식탁에 올리는 간단한 음식들도 책을 보며 만들 지경인데 그런 모습을 자주 보더니 책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여긴 듯하다. 상투과자 만들기를 검색했더니 앙금이 필요하고 앙금은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지만 한 번의 구매량이 너무 많아서 내키지 않았다. 강낭콩으로 만들어보기로 결정! 볕이 너무 드거워서 마당에 나갈 수도 없으니 주방에서 상투과자를 한 번 만들어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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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실에 얼려둔 강낭콩을 녹여서 껍질을 모두 벗긴 후, 면보를 깔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찐다. 고운 체에 강낭콩을 으깨어서 가루로 만든 후에 팬에 담는다. 강낭콩 양(이번에는 500g)의 30% 정도의 설탕을 넣고 불을 켠 후 주걱으로 저으니 오래지 않아 앙금의 형태가 갖추어져서 얼마나 신기하던지. 다시 볼에 덜어낸 후에 계란 1개, 시나몬 파우더 1 티스푼, 우유 2 테이블스푼, 아몬드 가루 50g을 넣고 잘 섞는다. 짜는 주머니에 넣고 유산지를 깐 오븐 팬에 상투과자 모양으로 조금씩 짜서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 17분 구웠다. 하루의 반을 투자한 것 치고는 양도 조금이고 모양도 그리 근사하지는 않지만 접시에 덜어놓으니 뭐 그럭저럭 보아줄만은 하다.


'행복한 레시피'는 내가 좋아하는 요리책, 그중에서 제일 처음 만들어본 오븐에서 구운 감자.


가지고 있는 요리책에 찾는 레시피가 없을 때는 인터넷 검색을 해본다. 인터넷으로도 딱 맞는 레시피가 없을 때는 비슷한 여러 개의 레시피를 읽어보고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가져다가 내 마음대로 재구성을 하거나 재료나 시간, 방법 등을 조금씩 변형해서 만들어본다. 과자를 만들고 빵을 굽고 나물을 무치는 방법들을 엄마에게 물어보지 않고 인터넷에 물어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터넷이 내 엄마가 될 수 없음이 당연한 것처럼 밥을 지을 때 쌀과 물이 필요한 것도 당연하다.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거의 다 알고 있고 한 번 듣거나 보면 금방 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면 하루에 보통 식사는 3번을 하고 된장찌개에는 된장이 들어간다는 것. 끓이는 사람에 따라 혹은 같은 사람이라도 끓일 때마다 부재료가 조금씩 달라지게 마련인 것들을 자기 것이라 하는 게 요즘 유행인가 보다. 말없이 따라 하거나 블로그에 올리면 부도덕한 사람으로 손가락질도 당하는 모양인데 그런 시각으로 나를 봤더니 나는 그만 부도덕한 표절의 여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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