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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Dec 11. 2022

사랑한다고 말해요. 지금

아나 클라우디아/죽음이 물었다



    며칠 전 새벽에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월드컵 16강전이 치러졌다. 경기가 끝난 후 브라질 선수들이 펼쳐 든 현수막에는 '펠레(PELE!)'라고 적혀 있었다. 펠레는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인데 얼마 전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고 한다. 화학요법 대신 '완화치료'를 받기 위해서다. 기사*는 '완화치료'에 관해 심각한 말기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위한 고통 완화 단계라는 짧은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마침 읽고 있던  [죽음이 물었다]에 의하면 완화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한 펠레에게는 의학적으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렇다 해도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여전히 남아있을 터였고 브라질 선수들은 그걸 알았다. 죽음을 앞둔 과거의 축구선수에게 승리는 선물이 될 터였다. 하지만 그들이 알았던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펠레에게 승리를 가져가기 위해 뛰고 또 뛰었던 자신들 역시 언젠가 죽음이라는 장벽 앞에 서야 한다는 것도, 어쩌면 바로 옆에서 죽음이 함께 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력을 다해 달리고 뛰어올랐을 것이다. 끝에 다가갈수록 더 간절해지는 것, 그게 삶이니까. 경기가 끝나니 밖이 훤했다. 부엌에 내려가 물 한 잔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싱크대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창문 밖 마당을 바라보게 된다. 시선은 주목과 소나무, 잎이 떨어진 수국과 장미 덩굴을 지나 지난봄에 심은 작은 라일락에 닿는다. 잎을 떨구어 앙상한 가지를 헐벗은 팔처럼 치켜들고 겨울 마당에 선 키 작은 나무다.  넓지 않은 마당에 마구잡이로 심은 나무들이 눈에 거슬려 두어 그루를 잘라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가끔 들르던 농장에서 골라온 나무였다.  코로나 시국이 2년을 넘어가고 있던 때였다. 무력감이 공기 중에 안개처럼 떠다녔고 권태와 나른함을 이기지 못해 몸을 비틀던 시절이었다. 무엇을 해도 시들했다. 새해 벽두에 코로나에 걸린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안타까웠다. 봄이 왔을 때 친구의 몸이 상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불안과 우울이 번갈아 다가왔다. 와락 겁이 났다. 어느 날 아침에 죽음이 항상 곁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오리가 된 기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리처럼  '나, 아직 죽지 않았구나!' 속으로 생각했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일이 주어질까 궁금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당시 나는 꽤 심각했던 것 같다. 메마른 흙덩이를 밀어 올리는 붉은 작약을 보면서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애가 탔고, 마당을 푸르게 물들이던 물망초 덤불이 내년에도 무성할 것에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기가 막혔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무엇이라도, 누구라도 움켜쥐어야 할 것 같았다. 곁에 두고 눈 맞추며 고개를 끄덕일 대상이 필요했다. 나무를 심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라일락을, 작은 것으로(무럭무럭 자라서 오래오래 살라고) 골랐다. 마당에 심고 매일 지켜봤다. 나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잎을 내고 꽃을 피웠다. 빛이 많이 섞인 보라색 꽃은 작았고 향기는 별처럼 빛났다. 그 나무를 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무가 살아있으면 나도 살아있을 수 있다고, 하트를 닮은 잎이 바람에 날릴 때마다 나 역시 몸을 떨며 살아있어서 참 다행이야! 생각했다.  이렇게 잎을 무성하게 달고 꽃으로 온몸을 감쌌으니 혹여 좀처럼 끝나지 않는 장마에 뿌리가 짓무르거나, 북풍이 몰아치는 겨울밤을 이기지 못하고 얼어 죽게 되더라도 아쉽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 나무는 다시 맨몸이 되었다. 겨울이 왔지만 라일락도 나도 여전히 살아있다!


   그 봄에 그렇게 겁을 냈던 건 당장에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에 후회하지 않고 '벽'뒤로 사라질 자신이 없었다. 지나온 시간보다 남아있는 시간이 적으니 모른 척 다시 살아보겠다고 억지를 부질 처지도 아니었다. 삶에 대한 간절함이 솟구쳤지만 허둥거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고 그런 모습이 한심해서 또 불안했다. 장마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빗줄기 너머로 작은 나무는 침묵했다. 오고 가는 계절에 맞서지 않고 주어진 빛과 빗물과 바람 이상을 탐하지 않던 나무가 어느새 한 뼘 넘어 자란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여름도 끝자락이었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이 내 안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기 시작했던 것도 그즈음이었다. 물기를 잃어 가벼워진 이파리가 가지 끝에 겨우 붙어있다가 한순간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닮고 싶었다. 그 홀가분함을, 그 미련 없음을 내 것으로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여름을, 세찬 빗줄기와 오후의 태양을 피하지 않았어야 했다. 이미 가을이었다. 조금씩 맞서는 연습을 했다. 바람과 서리를 피하지 않았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날들이 아니라 바로 오늘을 위해 버텼다. 스스로를 돌보는 일, 그게 내가 할 일이었다. 매일 해치워야 할 일들을 줄일 수는 없지만 순서는 바꿀 수 있었다. 무엇을 하든 첫 번째 자리에 나를 놓는 것, 생각만으로도 벅찼다. '죽음은 삶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 이유'였다.



   [죽음이 물었다]의 저자, 아나 클라우디아가 하는 얘기가 바로 그거였다. 저자는 더 이상 의학적으로 해줄 것이 없는 환자들, 그러니까 죽음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는 환자들이 삶의 마지막 시간을 고통 없이 존엄성을 지키며 죽음과 나란히 걸어갈 수 있도록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는 '완화치료' 의사로 오래 일해왔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들을 돌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보살피는 데' 있었다는 걸 고백하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가 향하는 곳은 그러나  '완화치료'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자신을 돌보는 일이라는 깨달음은 새해가 올 때마다 되풀이되는 덕담처럼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으니 거두어 두고 생각날 때마다 되새길만하다.


  펠레는 팔로워가 1000만 명이 넘는 SNS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평소처럼 치료를 받고 있다."며 "병원에서 월드컵 경기를 본다"라고 썼지만 죽음 앞에서 그는 혼자다. 그의 죽음을 이해해야 하는 건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펠레다. 그건 다른 누구의 죽음도 아닌 펠레의 죽음이니까. 그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진다. 언젠가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또 어떨까? 삶을 이야기하는 모든 이야기의 끝은 죽음이고, 죽음을 이야기하는 모든 이야기들은 삶에서부터 시작한다. 잎 떨어진 라일락을 볼 때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스스로에게 나무를 심던 어느 봄날의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을 매일 주문한다.



* 중앙일보 국제팀 기사 (2022.12.9) 참조

** 볼프 에를브루흐 [내가 함께  있을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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