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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Dec 20. 2022

문학 자문위원 고양이

뮈리엘 바르베리/작가의 고양이들

   제목 [작가의 고양이들] 보다 더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작가의 이름, 뮈리엘 바르베리였다. 뮈리엘 바르베리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책이 푸른 종이 상자에 담겨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며칠 동안 그 고양이들의 이름을 상상하는 건 마치 입안에 숨긴 작은 사탕을 녹이는 것처럼 즐거웠다. 작가가 [고슴도치의 우아함]에서 고양이를 도구로 다루는 기술(그러니까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치로서의 고양이,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양이의 이름 말이다)에 홀딱 반했던 나로서는 당연히 고양이 이름이 가장 궁금할 수밖에.


  [고슴도치의 우아함]에는 고양이들이 여럿 등장한다. 우선 르네는 '레옹'이란 이름을 가진 고양이와 함께 산다. 그녀의 첫 번째 고양이 이름이 '카레니나'였다는 것까지 알고 나면  르네가 톨스토이의 열렬한 팬이라는  걸 눈치채게 된다. 게다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고 보고 또 보는 그녀 앞에 가쿠로 오즈라는 일본인이 나타나는데 , 그 역시 키티와 레빈이라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소설의 또 한 축인 팔로마의 집에도 고양이들이 사는데 그들의 이름은 '헌법'이와 '의회'다 (고슴도치가 나오지는 않는다. 팔로마가 르네를 일컬어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갖춘 사람이라고 했을 뿐).



  작가의  '고양이들'이라고 했으니 최소한 두 마리 이상일 테고, 그렇다면 '키티'와 '레빈'일까? 혹시 팔로마와 함께 살고 있는 '헌법'이와 '의회'일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특별한 고양이들의 이름은 '오차', '미즈', '페트뤼스', '키린'인데 오차는 차, 미즈는 찻물을 뜻하고, 페트뤼스는 와인 이름이고 키린은 맥주 이름이다. 물론 내 예상을 빗나간 것이 고양이들의 이름뿐이란 건 아니다.


  이 글의 화자는 키린, 고양이다. 당연하다. 제목이 [작가의 고양이들] 아닌가. 작가와 함께 사는 고양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구나. 작가라는 특별한 인종과 한 집에서 사는 게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얘기하겠구나. 뻔하지 뭐. 아니지. 작가는 다른 이가 아니라 뮈리엘 바르베리가 아닌가. 그렇게 뻔한 얘기를 늘어놓을 이가 아니지 않나. 그렇다. 이 책은 고양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작가에 관한,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작가로 사는 일에 관한 기쁨과 슬픔, 글쓰기의 고통과 희열, 어떻게 좀쑤심을 극복하고, 의구심을 넘어서서, 자신의 글을 부인否認할 용기를 내는가에 관한 고백인 것이다.


  '세상이 뿌리를 잃고 부유浮遊하며, 인류는 늙은 데다가 환상마저 잃고, 종말이 가까워서 유일하게 남은 저항이 아름다움과 시뿐이라면', 고양이에게 기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작가에게 고양이들은 '성벽이고 방패'인 셈이다. '고유의 시정詩情을 타고난 고양이는 잘 보존된 순수이자 조화이며, 재앙이 이어져도 꿋꿋이 밤에 맞서는 천진난만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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