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살던 집에는 앵두나무가 있었다.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풍채가 당당했다. 엄마는 앵두꽃이 필 즈음이면 앵두나무 옆으로 평상을 옮기는 일로 봄맞이를 했다. 우리는 종종 거기에서 소꿉을 놀거나 낮잠을 잤다. 오가다가 들르던 이웃들이 잠시 쉬어가기 맞춤이었고 장바구니에서 나온 채소들을 다듬기에도 좋았다. 앵두꽃이 핀 풍경은 기억에 없지만 앵두가 빨갛게 익어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건 생각난다. 앵두나무는 제 열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나뭇가지를 늘어뜨려 키가 작은 우리들도 앵두를 딸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내 손님을 맞이한 건 딱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여름방학을 하고 며칠이나 되었을까. 느닷없이 내 이름을 부르면 들어섰던 친구, 예상치 못했던 방문에 화들짝 놀란 나는 얼떨결에 그 아이를 앵두나무 아래 평상에 앉혀놓고는 부엌으로 뛰어들어갔는데 마땅히 내놓을 게 없어 엄마가 아끼는 유리 저그에 얼음을 담아서 인스턴트 주스 분말을 듬뿍 넣고 저어서 가져갔더랬다. 집에 나 이외에는 없었고 친구는 식구들이 돌아오기 전에 일어섰으니 그는 그대로 없는 사람이 된 여름, 대학 일 학년이었다.
지금 내 마당에도 앵두나무가 산다. 기억 속 나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앵두나무는 자랄 것이다. 작은 앵두나무가 자라는 속도로 살면 되겠다 싶다. 꽃그늘에서 금방이라도 엄마가 걸어 나올 것 같다. 앵두를 가득 담은 파란색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