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원
시리 허스트베트, [어머니의 기원]
글을 읽는 건 새로울 게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익숙하고 편안하다. 방해 없는 시간에 내 방에 들어앉아 페이지를 넘기는 일보다 더 쉬운 일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독서는 쉬운 만큼 좋아하는 일이기도 해서 시리 허스트베트의 말마따나 '선물로 받은 일종의 여행'이다. 나는 '여러 개의 방으로 들어가서 거리를 걷고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내게 낯선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사상의 구조'에 새로이 다가가기도 한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책을 읽는 시간은 평온하고 설레고 즐겁다. [어머니의 기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작은 그랬다는 말이다.
글은 ‘괄괄하고 뚱뚱하고 요지부동인’ 할머니, 틸리에서부터 시작한다. 할머니들에 관한 오래된 클리세가 등장하리란 예상은 하지 않았기에 더 신이 났던가. 각양각색의 헛소리, 이를테면 할머니는 따뜻한 포옹이고 달콤한 추억이라는 판타지에 도전하는 문장들이 춤을 춘다. 후대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들, 즉 할머니의 온기, 희생, 마음 아픈 고생에 대한 진부한 이야기들을 레이스 커튼처럼 늘이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할머니 틸리를 이야기하는 시리는 눈이 부시다. ‘반항심을 억눌러 삼키지 않았고 신랄한 폭소나 노골적인 기쁨을 막지 않았다. 분노가 닥쳐오면 가장하지 않았다.’ 지적으로 탁월하지 않았고 통찰력도 뛰어나지 못했으며 철학적 사유로 자신을 바라볼 수는 없었던 할머니는 ‘결혼과 가난과 수치라는 당혹스러운 현실에 종속된 백인 여성’이었다. 그런 할머니의 생존을 도운 건 ‘분노’였다. 이후의 글들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할머니의 분노, 어머니의 분노, 시리 허스트베트의 분노, 여자의 분노, 무엇이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가.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문화적 편견과 고정관념 깨트리기’는 어머니 이야기에서 한층 고조된다. 신화의 파괴가 일어난다. 고착화된 역할 뒤에 숨은 분노하는 여인들을 볼 줄 아는 사람의 힘은 세다. 어머니들을 겨냥한 문화적, 도덕적 감정으로 겹겹이 에워싸인 갑옷을 벗은 작가의 어머니는 이른바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머니들을 떠올릴 때마다 불가피하게 등장하는 전형도 아니고, 남녀의 위계질서에 갇힌 사람도 아니고, 위대한 어머니나 동정녀 마리아나 대자연이나 육아잡지에 실리는 부드러운 광고에 실리는 어머니상과는 한참 떨어져 있다.
작가는 할머니를 보았던 그 눈으로 어머니를 본다. 할머니와 어머니라는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한 글은 진부한 어머니의 신화를 박살 내며 공적 담론으로 향한다. 아버지들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밀려나고 빼앗기고 삭제되어 잊혔던 어머니들의 역사를 복원하는 여정은 지난 시절 he가 대신했던 모든 일반 대명사를 she로 바꾸는 것으로 시작되어 세해라자데,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를 관통하는 읽기로 이어진다. 시리 허스트베트는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것’들이 잘못된 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다. 그리하여 책의 뒷부분에 이르러 ‘정말 착한 여자애는 빈칸이고 유령이고 아무도 아닌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나는 시리 허스트베트가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집안의 천사를 죽이고 어머니를 되찾는 것을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눈동자가 커지고 숨이 찼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을 만한 사적인 이야기를 거대서사로 확장시키는 능력, 유머와 확신, 경계를 넘나드는 용기와 이를 뒷받침하는 자신감도 놀랍다. 무엇보다 무서웠다. 문을 열고 싶지 않았던 세계가 난데없이 펼쳐지는데 그 거침없음에 진저리가 났다. 할머니에게서 시작한 이야기가 어머니와 자신을 거쳐 플라톤에게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야기는 강물처럼 흘러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의 영토를 지나 루이즈 부르주아의 노회함, 여성혐오, 실비아 마리 라이킨스의 살인에 이른다. 마지막 에세이를 읽으면서 아프기 시작했다. 열이 났던가. 땀이 흘렀던가. 한 권 내내 여자와 대척점에 있었던 남자가 내려오고 그 자리에 여자인, ‘어머니’인 살인마 거트루드가 등장한다. 끔찍한 일을 저지른 가해자의 삶을 해부해 그녀 역시 피해자였음을 밝히는 궤적을 따라가는 일은 고통스럽다.
얼마 남지 않은 페이지를 이어가지 못하고 책을 덮은 건 잠을 이루지 못할까 봐, 꿈을 꾸게 될까 봐 겁이 나서였지만 소용없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책에서 읽은 장면들이 생생한 이미지로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혐오’란 단어가 창백하게 빛났다. 어쩔 수 없었다. 일어나 앉아 밤의 창밖을 노려보다가 다시 불을 밝히고 책을 펼쳤다. 마지막 문장까지 읽은 후 스스로를 진정시키느라 온 밤을 다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