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 것은 관람석과 무대를 오가는 것과 같다. 남의 인생을 바라보며 웃고 울다가 불현듯 내가 있는 곳이 관람석이 아니라 무대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무대 위에 있어 삶은 연극이고 누군가는 내내 나를 지켜봐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때로 서늘하고 오싹한 각성의 시간들이 간다. 보이고 들리는 게 전부가 아니고 순간은 영원과 등을 맞대고 있다. 원하지 않아도 우리가 서로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종종 일어나고, 나를 묶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란 사실을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게 되어버릴 즈음이면 우리는 늙어 있다.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소설 몇 편을 읽었다. 대단한 인물들이나 놀랄만한 사건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특별할 게 없는 밋밋한 하루에 가끔 그림자처럼 죽음이 스쳐 지나갈 뿐. 읽는 이들은 보이는 그대로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작가가 숨겨둔 무언가를, 생략하고 암시하고 비유하며 은근하게 다가오게 만든 것들을 놓치지 않도록. 그녀가 체호프의 후예라는 걸, 버지니아 울프가 질투했던 작가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글을 읽을수록 쓰기가 어렵다. 눈앞에 있는 사물, 금방 헤어진 사람인데 글로 옮겨놓고 보면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빈약하다. 햇살에 타오르는 듯 붉게 빛나는 나무수국의 꽃잎들을, 로즈메리 줄기의 짙푸른 향기를 글로 바꾸는 일에 오늘도 실패했다. 말들은 언제나 잘못 던져진 공처럼 엉뚱한 곳으로 튀어가 제멋대로 구른다. 이리저리 따라가다가 지치고 낙담한 나는 결국 포기한다. 무엇이든 글로 표현한다는 것의 무모함을, 작가들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글 속에 담긴 마음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쓰던 이가 미소 지었을 문장에서 나도 미소 짓고 울컥하는 지점에서는 그가 울었겠구나 싶다. 그래서 글을 읽고 나면 길을 걷다가 멀리에서도 글쓴이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 공연히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늘 속 그림자처럼 숨어서 몰래 쫓아다니고 싶다. 글에는 그런 힘이 있다. 무엇 또는 누군가에 대한 시도의 흔적을 알아채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