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용 책

신해욱

by 라문숙


표지도 담백하고 제목도 담백하다.

글도 담백하다. 그런데 맛있다.

맛있어서 숟가락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음식처럼

다 읽을 때까지 곁에서 떼어놀 수가 없었다.

그러고도 다시 읽는다. 그러면 처음 만나는 것처럼 내숭을 떤다.

마치 매일 아침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처럼.



짧은 글들이다.

신문에 연재된 글들이라서 700자 분량이라고 한다.

작가가 만난 풍경, 별 일 없는 그저 그런 하루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좋은 날도 있고 문제가 생긴 날도 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그냥 문제가 있어 하고 말만 한다.

그래서 어쩐지 그 문제는 심각한 것도 아니고 저절로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책장을 넘기면 저절로 찾아오는 평온으로 그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저절로 알게 되는 문장들이 나를 반긴다.




종이 위에 퇴적된 마음의 지층들이 겹겹 뚜렷하다. 맨 밑에는 20세기 초의 작가가, 그 위에는 번역자와 편집자가 있다. 다시 그 위에 80년대의 독자와 90년대의 독자와 2014년의 독자가 차례로 흔적을 쌓고 있다.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책은 서점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 합하면 수만 권도 넘지 않을까. 그러나 마음의 지층이 이런 무늬로 남아 있는 책은 나에게만 있다. 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한 권의 책을 읽고 있다. 시간은 모든 책을 단 한 권의 책으로 만든다.

p. 342 ( 책의 제목이 왜 일인용 책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문장)




도통 글감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소재들이 글 한편 한편에 녹아있는데

글 속의 순간들에 끼어들다 보면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일인용 책을 읽는 며칠간은 하루가 한정 없이 길어졌다.



책을 읽고 나서 눈에 들어오는 사물이 달라 보인다. 일인용이라서.

책을 읽고 나니 내 앞에 있는 하루가 더 특별해 보인다. 일인용 하루가 될 것이라서.

좋은 책을 읽고 나니 좋아하는 단어가 하나 더 생겼는데 그건 바로 '일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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