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와 김치
창밖으로 수런거리는 마당을 바라본다. 겨울을 난 여러해살이 식물들 사이로 며칠 전 꽃모종을 심은 화분 몇 개가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묵화 속 풍경처럼 보이던 마당이 화사하다. 색이 섞이기 시작한 까닭이다. 붉고 노란 튤립과 히아신스, 크로커스들이 침묵하던 정원을 깨운다. 유리창 너머로 고양이들이 오가고 어린 까치들이 나뭇가지를 건너다니며 날기 연습을 하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소란한 봄인데 뭔가가 빠졌다.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휑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마당을 휘돌아 나간다.
김밥을 싸고 있는데 택배가 왔다. 엄마의 김치가 들어있다. 김밥을 말던 손으로 배추 겉절이 한 조각을 집어 들어 입안에 넣었다. 갖은양념으로 범벅이 된 배추가 아삭하고 고소하다. 김밥을 싸던 손이 빨라진다. 나는 김밥 대신 겉절이와 밥을 먹어야지, 고개를 끄덕인다. 김밥을 한 줄 쌀 때마다 밥이 줄어든다. 김밥 재료가 아직 남았는데 그만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초조함이 몽글몽글 뭉쳐지는 게 느껴진다. 별일이군. 먹는 욕심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남은 김에 밥을 올리고 속재료를 넣어 말았다. 설거지는 나중에, 지금 당장 저 김치를 먹지 않으면 뭔 일이라도 날 것처럼 서두르는 품새가 내가 봐도 우습다. 식구들을 불러 모으는 건 그 후에 해도 된다. 오로지 김치, 김치 생각밖에 안 났다. 비닐봉지에 든 배추 겉절이를 김치통에 옮겨 담으면서 동시에 먹기, 밥 한 숟가락에 김치는 서너 쪽이다. 밥이 줄어드는 걸 흘겨보면서 김치를 집어먹고 또 먹고. 밥이 적어 서운해 김치가 더 달았다. 김치가 들어있던 비닐을 헹구고 스티로폼 상자를 내놓았다. 김밥을 썰어 접시에 쌓는데 길고 큰 한숨이 나왔다. 싱크대 앞에서 바라본 마당이 꽉 찼다. 내 안의 허기가 채워지니 세상도 달라 보인다. 뭐가 빈 건 줄 도통 모르겠더니 바로 이거였구나. 오래전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그제야 온전히 이해되었다.
집에 혼자 있는데 아파트 단지에 멍게 트럭이 왔단다. 불현듯 멍게가 먹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친구는 뭔가에 홀린 듯 지갑을 들고 종종걸음을 쳤는데 그날따라 승강기가 좀처럼 올라오지 않아 그만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고 했다. 내려가는 중에 혹시라도 멍게를 실은 트럭이 떠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고, 누구라도 멍게를 사려는 이가 있어 트럭을 좀 잡아 주었으면 좋겠는 마음에 멍게 장수가 틀어놓은 녹음테이프의 볼륨이라도 높이면 좀 좋아 혼잣말까지 하고는 얼굴이 빨개졌다나.
멍게가 가득 든 스티로폼 상자를 들고 올라가는데 세상을 얻은 것 같았다고 했다. 텅 빈 집안에서 홀로 멍게를 손질하기 시작했단다. 접시에 손질한 멍게를 올려놓지도 못한 채 싱크대 앞에 서서는 손질한 멍게를 바로 입안에 넣었다고 했다. 그렇게 빈 접시를 옆에 놓아두고는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며 먹다가 멍게 한 상자를 다 먹어버렸다고. 제법 많은 양이었기에 다 먹고 나서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는 그녀를 나는 단박에 이해했다. 아무도 없는 집, 싱크대 앞에 서서 멍게를 먹고 또 먹는 친구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접시에 올릴 새도 없이 허겁지겁 먹다가 상자가 비어버릴 지경에 이르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을 그녀의 허기를 나도 알았다. 봄은 하루하루 농익어 가는데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가며 쓸고 닦고 끓이며 삶는 게 고작인 날들이 우리 안에 심어놓은 허기였다. 강바닥에 모래처럼 쌓이던 그리움이 주방의 냄비에서 졸아들다가 기어이 타버리는 걸 봐야 했던 어쩔 수 없음, 그러고도 아무 일 없었던 듯 침묵했던 날들이 허기의 한 모습이기도 했다는 걸 서서히 깨달은 즈음이었을 것이다.
멍게를 상자로 먹어치워도, 손으로 김치를 집어 먹어도 도통 채워지지 않는 이 허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주변의 사람들이 다 돌아다볼 정도로 왁자지껄 떠들고 테이블이 부서져라 두드리며 호기를 부리는 이들의 뒷모습에서 공허라는 이름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일, 좋아하는 음악가의 연주를 아무리 들어도 가시지 않던 갈증, 봄볕이 어지러운데 빛바랜 노란색 머리카락 사이로 삐죽 돋아난 검은 머리칼, ‘문학은 허기로써 가 닿아야 한다’는 말. ‘허기진 얘기는 골백번 들어도 새롭다고, 이 허기는 하느님도 못 건드린다고.’* 그렇다. 본래 우리는 허기진 존재일지도 모른다. 항상 외롭고 배고프고. 그래서 누군가의 환대가 필요한.
*김성복, [무한화서] 중에서
몇몇 글들을 퇴고해서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지난 글들은 삭제합니다. 남겨주신 말씀들과 공감은 마음 속에 간직할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