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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도락 Nov 14. 2022

우리 부부가 잘 사는 법 / 생일 때마다 털리는 지갑

돈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돈은 아니다. 용돈을 받아쓰는 우리 아들에게 10,000원은 몇 달 치 용돈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10,000원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돈이 되기도 한다.       


우리 집 경제권은 둘 다 가지고 있다. 통장 관리는 남편이 하고, 보험, 적금, 관리비, 세금 쪽은 모두 남편 담당이다. 나는 생활비 카드 한 장이 있고 용돈 카드 한 장이 있다. 먹고 아이들과 노는 공식적인 소비는 생활비로 책을 사거나 남편과 상의 없이(?) 사는 비공식적 소비는 내 용돈 카드로 지출한다.  

   


남편은 용돈을 현금으로 10만 원을 인출한다. 주로 예전에는 이발 비를 내거나 (지금은 카드로 지출) 아이들과 다닐 때 현금이 필요한 곳에 쓰거나 (붕어빵 뽑기 등등) 지인의 아이들을 만났을 때 용돈 주는(?) 용도로 사용한 거 같다. 돈이  많았으면 당연히 통장을 따로 만들었을 텐데 그리 쌓이지 않으니 매 번 현금으로 작은 기쁨을 누리는 것 같았다.   

      


내 생일이 되었다. 남편이 세상 쿨 한 척하며 말한다.      

우리는 따로 선물을 준비하는 사이가 아니지 않느냐. (그냥 필요한 건 상의해서 그때그때 사니까) 생활비를 따로 받아쓰는 사람들에게는 남편이 비싼 선물을 사 주거나 현금을 주면 좋아하고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는 돈이 다 투명하게 오픈되어 있으니까. 모든 것은 자기한테 집행 권한이 있으니까. 그런 선물이 서로에게 의미가 없지 않냐고.       

맞는 말이지만 괜히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러면서 남편이 자신의 지갑을 내민다. 

나는 그래서 자기 생일 때마다 여기 쌓인 돈 전부를 주기로 했다고. 그 모습을 보면서 딱 이런 노래가 떠올랐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호라. 신박한 생일 선물이다. 많지 않은 용돈을 받아쓰면서 거기서 또 남은 돈을 국가에 환원하듯(?) 나에게 다시 돌려주겠다니. (앞으로 용돈 좀 아껴 쓰라고 잔소리해야 하나)       


돈 문제로 참 많이도 싸웠다. 

돈은 사람을 있어 보게도 하고, 초라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음을 내려놓으면 이렇게 기쁜 날도 오는구나.

오늘 내가 그에게 받은 돈은. 수 백 개의 돈다발 보다 값진 돈이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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