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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 정문선 Jan 17. 2021

[책리뷰]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능력주의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

결코 공정하지 않다”며 능력주의 민낯을 들추며 논하다.

능력주의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

저자(마이크 센댈)는 지금 시대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공정’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능력주의 신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다. ‘노력하면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능력주의의 결과에 대한 이야기다. 능력주의의 민낯과 학력주의의 허상을 구체적으로 들춰낸다. 능력주의가 과도해지면서 능력과 도덕 판단력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한다. 센델 교수의 고민은 미국 사회에만 국한되지 않고 현재 한국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능력주의의 능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가 아니라 능력주의 자체가 문제라고 한다. 능력이 정당하게 획득되고 정당하게 발휘된 과정이 담보되지 않은 채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주문을 외우며 선동하는 지도자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더 이상 대학교육으로 계층 상승의 꿈을 이룬다는 약속은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가진 능력을 힘껏 펼쳐 성공하면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 지금 이 세상을 이끌고 있는 능력주의의 핵심이다. 많은 사람들은 우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No'라며 제동을 건다. 무엇이 그 능력을 만들어 내었는지 실상을 돌아보면 능력이 성공을 보장하는 사회는 어쩌면 더 이상 정의롭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란 ‘기회를 공평하게, 능력은 마음껏 발휘하도록, 결과에 따라 성과를 배부하는 합리적인 방식’이다. 장점도 많지만, 능력주의의 오류와 폐단도 많다. 내가 가진 재능과 사회로부터 받은 대가는 과연 온전히 내 몫인가? 타인의 도움과 지지는 없었는가? 노력에 비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는 사회를 잘 만난 행운은 아니었을까? 선행학습이 판을 치는 입시 제도에서 개인의 온전한 능력도 의문이다. 동일한 위치와 조건에서 출발하지 않은 채 기회의 평등을 외칠 수는 없다. 또한, 공평한 기회 제공과 능력 발휘를 위한 제도는 간단하지 않고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통제하기도 어렵다.      


 2020년 서울대・고려대・연세대(소위 SKY)의 신입생 55%가 소득분위 9~10 분위 고소득 가구에 속한다. 가정 형편이 좋은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간다는 방증이다. 사교육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 버렸다. 미국의 SAT 시험도 상위권에 속한 학생들은 부유한 환경일 확률이 높다. 학생의 고득점 역량은 가족의 경제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험이란 본래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현실에서는 불평등 사회의 세습의 대물림 수단으로 강력하게 활용되고 있다.  

         

 국가는 시스템을 공정하게 만들고, 개인은 열심히 노력하여 자부심을 갖고 그 대가를 향유하는 사회는 누구나 바라는 이상적인 국가일 것이다. 자칫 목표 달성 수단으로 능력주의를 최우선으로 적용하는 사회는 바람직할까? 부의 양극화와 이를 공고화하는 고학력 세습화의 심화, 극히 소수만이 자본과 권력을 독점하는 사회구조가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능력주의의 폐해에 대한 현상으로 진단한다. 엘리트(학력) 지상주의에 대한 반기로 일과 삶에서 소외된 자, 대학을 가지 못한 백인 노동 계층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일에 대한 존중을 받지 못하고 분노와 억울함을 대변한 포퓰리스트(트럼프) ‘반란’을 통해 능력주의 중심사회에 내재한 시민들의 모욕 분출로 해석한다.       

"능력으로 편을 가르고, 한 편이 성과를 독점하면서, 능력과 성과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계급이 생기고, 이를 세습하기 위한 범법적 시도가 출현하고, 이를 독차지한 사람들의 오만이 극치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탈락한 사람들은 부의 상실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존심을 잃고 굴욕감을 갖게 되어 이것이 심화되면서 사회적・정치적 긴장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근원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능력주의에 따르면, 만일 당신이 대학에 가지 않아 이런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 실패는 당신의 잘못이 된다. 사회의 상층부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 잘못에 따른 것이기에 자괴감을 갖게 된다. 그들이 성공한 자들로부터 받은 모욕은 정당한 것인 반면 자신은 모멸을 당해 마땅한 존재가 된다. 그런데 정말로 학위가 없고 성공하지 못한 자는 업신여김을 받아 마땅한가? 특정 직업에 대해 비하하는 시선을 가지게 되는 것이 능력주의 사회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학을 나오는 사람과 나오지 않는 사람에 대한 시선이 다르니 대학은 가는 곳으로 전제하는 것이 능력주의 사회의 잘못된 시각이다.   

 불평등 해결을 위해서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공정한 사회’란 무엇인지 공론화를 통해 나 하나만 성공하려 애쓰기보다 함께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다. 사회적 연대로 약자를 배려하며 보호하는 마음이다. 모두가 함께라는 공동체 윤리,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는 것이 불평등을 해결하는 핵심원리라고 제언한다.   

“우리는 능력 경쟁을 위해 무장한 사람보다는, 학위가 없지만 우리 사회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사람들, 자신의 일을 통해 부양가족과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내가 받은 사회적 명성과 대가가 행운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때 겸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온 시민들이 다른 의견에 관해 타협하며 우리의 다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울 때 공동선은 길러진다고 말한다. 공동선을 추구하며 연대하는 것이 능력주의 폐단을 극복하는 대안일 수 있다고 제시한다."    

 책을 읽으면서 뒤 페이지를 들추기를 반복했다. 주제가 무거워서 일까?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일까? 평소 고민해 보지 않는 분야여서 다소 버거웠다. 공정이 화두가 되고 사회적 혐오와 불만이 가득 차 있는 지금 시점에서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난 1년 동안 코로나 19 팬데믹은 불평등의 약한 고리들을 더욱 노출시켰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조명받지 못한 배달업, 운송업, 청소업, 일용 노동자 등의 직업들을 부각했다. 그분들이 노력이 있었기에 사회가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지금도 코로나 19의 상황에서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수많은 영웅들을 기억하자. 소수의 엘리트에 집중되는 사회, 성공한 사람만이 조명되는 사회는 모래 위에 지어진 사상누각과도 같다.


 성공에 대한 태도는 내가 이뤄낸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함께 살고 있는 누군가의 헌신 위에 있음을 기억하자. 빚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능력주의의 신화에서 깨어나자.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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