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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 정문선 Mar 13. 2021

[책 리뷰]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고

소박한 아름다움의 황홀한 연주

‘희망과 사랑'을 노래하면서 인향을 전했던 큰 작가


한국 문학의 크고 따뜻한 이름, 박완서 그가 남긴 산문 660편 중 가장 글맛 나는 대표작 35편을 엮은 책입니다.


박완서 작가는(1931~2011)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과 15편의 장편소설, 동화, 산문집, 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1970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작가는 모진 삶이 안겨진 상흔을 글로 풀어내고자 작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소박하고 진실하게 희망과 사랑을 노래하는 그의 궤적이 모여 한국 문학의 큰 별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사랑의 입김을 불어넣어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젊은이들이 밝고 자유롭게 미래를 펼쳐가기를 얼마나 기원했는지, 하찮은 것에서 길어 올린 빛나는 진실을 알려주려고 얼마나 고심했는지, 생의 기쁨과 아름다움에 얼마나 절절하게 마음이 벅찼는지. 그러면서도 자신에게는 얼마나 정직하고 엄격했는지 그 담금질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라는 호원숙 작가(딸)의 서문은 뭉클한 감동을 전해줍니다.

     

일상의 소재를 따뜻한 시선으로 섬세하게 풀어내서인지 술술 읽힙니다. 그러나 문장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삶으로 행동으로 눌러쓴 문장이라 그럴 겁니다. 그의 글에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들이 담담하게 녹아있습니다. 작은 기쁨을 노래하고, 죽음과 상실의 고통을 절규하며, 가난과 차별에 당당하게 맞서는 강인함으로 멋스럽게 삶의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사람을 향하는 마음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표현되기도 합니다. 때론 자족하며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모습은 구도자의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울림을 주는 보석 같은 문장들(발췌)

     

“혼자 걷는 게 좋은 것은 걷는 기쁨을 내 다리하고 오붓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P13)

     

우리가 아직은 악보다는 선을 믿고,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흐를 것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이 세상 악을 한꺼번에 처치할 것 같은 소리 높은 목청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p26)

     

“남의 좋은 점만 보기 시작하면 자기에게도 이로운 것이, 그 좋은 점이 확대되어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변해 간다는 사실입니다.”(p134)


“누구나 다 알아주는 장미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도 좋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들꽃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소박하고도 섬세한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것은 더 큰 행복감이 될 것입니다.”(p136)


“행복해지는 것도 일종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성공한 소수의 천부적 재능과는 달리 우리 인간 모두의

보편적인 능력입니다.”(p138)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게 곧 성공한 인생입니다.”(p140)

     

아무리 어두운 기억도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르는 법이다.”(p175)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p216)

     

“작가의 눈엔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성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한테 미움받는 악인한테도 연민할 만한 인간성을 발굴해낼 수 있고, 만인이 추앙하여 마지않는 성인한테서도 인간적인 약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게 작가의 눈이다.”(P236)

     

사람의 생각이 투명하게 밖으로 내비치지 않는다는 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큰 축복일까.”(p283)

     

"내 둘레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 내 창이 허락해주는 한 조각의 하늘, 한 폭의 저녁놀, 먼 산 빛, 이런 것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바라보며 영혼 깊숙이 새겨두고 싶다.”(p286)  

지금껏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작가님의 삶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습니다. 힘들고 고된 삶의 전쟁에서 성실과 진심이라는 무기로 글을 벼리며 나아가는 삶은 독자에게 큰 반향을 줍니다. 에피소드를 읽을 때마다 때론 어릴 적 기억들이 오버랩되어 추억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지난한 삶을 진솔한 글로 풀어 내시며 ‘희망’과 ‘사랑’의 씨앗을 퍼트리셨던 모습들을 발견할 때마다 멈추고 생각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깨달음을 글로 표현하는 전해주는 지혜는 깊고도 넓었습니다. 인향만리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걸었던 궤적을 닮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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