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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음악을 알게 해 준 '그녀'

- 음악도 책처럼 기승전결 스토리가 있다

by 모티

20년도 훌쩍 넘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노래를

들어보라며 CD를 구워주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 사람이었다. 피아노 반주, 플롯도 취미로 배우는 중이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 그녀가 결혼해서는 매월 USB에 음악을 선곡해 주곤 했다. ‘함께 차를 타니 듣고 싶어 그러겠지’라고만 생각한 채로 10년이 지났다. 음악은 그녀에게 위로였고 상처’와 ‘아픔’을 다독여 주는 ‘심리적 안정제’이자 ‘절친’ 임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어릴때 부터 음악의 힘을 일찍 깨달아서인지 주야장천 나에게 음악의 좋은 효과를 전해주고 싶었던 거다. 음악에 별 관심이 없어 마지못해 들어주는 정도였다. 그런 아내가 몇 년 전부터 우쿨렐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손마디가 몇 번이나 벗겨지고 굳은살이 생길 정도로 연습을 하더니 단 기간에 목표한 곡을 연주했다. 그즈음 자기 계발 모임에서 연말을 맞아 부부 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아내는 흔쾌히 우쿨럴레를 연주할 테니 나에게는 노래를 부르면 된다고 선언 해버렸다. 한 달 동안 가정의 평화를 위해 스트레스 받으며 연습했던 아련한 기억도 있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 음정과 박자는 불안했고 고음에서는 자주 갈라지기 일쑤였는데도 내 노래 실력은 보통 이상인 줄 알았다. 가족끼리 동전 노래방에 가서도 따로 들어가게 된 것이 나의 소음 때문이었다. 노래 수준의 메타인지가 매우 낮았음을 최근에서야 아내와 아이들이 친절히 설명해 주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어느 순간 음악이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라 했던가 15년 동안 아내의 변함없는 도끼질이 서서히 먹히게 된 것이다. 아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궁금해지고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듣다 보니 왠지 모를 감정의 변화가 나타났다. 위로가 되고, 차분하게 해 주며, 기분이 다운될 때 힘이 나는 경험도 하게 되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음악들으며 걷게 되는 습관도 생겼다. 아내는 음악으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싶었는데 그것을 헤아리지 못했다. 감정상태를 전하며 끊임없이 음악 신호를 보냈는데도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지역처럼 내 주파수는 불통이었던 것이다.

아내가 오늘 공원을 걷다가 “이제 음악이 조금씩 들리냐고” 묻는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건네며 박보검이 감미롭게 부르는 ‘별 보러 가자’를 들려준다. “음악은 3~4분 동안 기승전결이 있고 스토리를 상상하면서 들어보면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어요. 오늘 같이 달이 빛나고 별을 보고 싶은 하늘이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서 별을 보자고 말하는데 조심스러워요. 가사에는 남자의 배려와 섬세함이 느껴져요. 그리고 서두르지 않아요. 사랑하며 아끼기 때문이에요.” 아내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음악이 다르게 들리며 감칠맛이 난다. 추가로 설명을 덧붙인다. “제가 좋아하는 싱어송라이터 가수들의 음악을 들으면 찌릿할 때가 많아요. 음악을 들으면서 가사를 음미해보고 스토리를 그리면서 들어보세요. 음악에 집중하다 보면 음악의 위대함을 알게 될 거예요. 4분 동안 마음을 움직이려면 얼마나 많은 고민과 함축이 되어 있겠어요.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꾼다고 하듯 음악도 한 사람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내의 시선은 그렇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가사 하나하나를 분해하고, 장면과 상황을 생각하고 분위기에 따라 듣고 싶은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왜 지금까지 이렇게 가르쳐 주지 않았냐고" 아내의 대답에 쓰러질 뻔했다. "받아들이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억지로 해줄 수는 없어서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린 거예요"

그러고 보니 나의 소통 언어는 ‘책’이었고, 아내는 ‘음악’이었다. 아내는 음악을 들으면서 내가 책을 읽는 것과 같은 깨달음과 배움의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하니 머쓱해졌다. '모든 것이 배움'이요, 일상의 '모든 것이 글감'이다.' 아내는 책에 대해 관심을, 나는 음악을 좀 더 세심하게 듣기로 합의하였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라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시가 떠오르는 잊지 못할 밤이었다.


"지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별 보러 가자'를 블루투스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고 들어 보세요. 노래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브릿지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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