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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고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이다.

by 모티

후회하는 일을 되돌릴 기회가 생각나면 다른 선택을 해보겠니?


주인공 노라는 죽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스스로 블랙홀이라 생각했다. 스스로 무의미한 불협화음, 망해버린 작품, 미완성된 인간 퍼즐이라 여기며 항우울제에 의지하며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하려는 찰나, 죽기 직전 거쳐 가는 자정의 도서관, 죽든지 살든지 기로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도서관에는 서가가 끝없이 이어져 있어 거기 꽂힌 책에는 내가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살아볼 기회가 담겨 있지. 네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볼 수 있는 기회인 거야"(p 49)

자정의 도서관이 존재하는 동안 죽음으로부터 보호를 받지만 어떻게 살고 싶은지 결정해야 한다. 도서관 사서인 엘름 부인은 노라에게 자정의 도서관을 안내해준다.

"모든 삶에는 수백만 개의 결정이 수반된단다. 중요한 결정도 있고, 사소한 결정도 있지.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때마다 결과는 달라져. 되돌릴 수 없는 변화가 생기고 이는 더 많은 변화로 이어지지. 이 책들은 네게 살았을 수도 있는 모든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야"(p51)

인생을 사는 동안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한번 한 행동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노라는 자정의 도서관에서 수많은 선택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선택한 인생에서 실망하는 순간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오게 된다. 노라는 올림픽 메달리스트, 여행가, 와이너리 대표, 록스타, 지구를 살리는 빙하학자, 캠브리지 대학 졸업생, 엄마, 혹은 그 외의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면 다른 인생은 살 수 없지만 노라는 다양한 인생을 맛볼 수 있었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수도 있고, 오감의 온갖 호사를 누릴 수 있고, 상파울루에서 2만 명의 관객 앞에서 노래할 수도 있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을 수도 있고, 지구 끝으로 여행할 수도 있고, 수백 만의 팔로워를 거느릴 수도 있고, 올림픽 메달을 딸 수도 있지만 사랑이 없다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다양한 여행을 한 끝에 진정 바라는 인생을 맛보았다. 그녀는 비로소 살고 싶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라는 걸 노라는 알게 되었다. 노라는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났다. 절망의 반대편에서 인생은 시작된다고 했던 사르트르의 말을 기억했다. SNS에 올렸던 자살글을 지우고 노라는 희망을 노래했다. 노라 자신이 블랙홀이 아닌 화산임을 알았다. 화산은 파괴의 상징인 동시에 생명의 상징이다. 용암은 시간이 흐른 뒤 비옥하고 영양가가 풍부한 토양이 되어 생명을 살리기 때문이다.


내가 배운 것들 (P391~393)


자신이 살지 못하는 삶을 아쉬워하기란 쉽다. 다른 적성을 키웠더라면, 다른 제안을 승낙했더라면 하고 바라기는 쉽다. 더 열심히 일할걸, 더 많이 사랑할걸, 재테크를 더 철저히 할걸, 더 인기가 있었더라면 좋았을걸, 밴드 활동을 계속할걸, 오스트레일리아로 갈걸, 커피 마시자는 제안을 받아들일걸, 망할 요가를 더 많이 할걸. 사귀지 않는 친구들, 하지 않는 일, 결혼하지 않는 배우자, 낳지 않는 자녀를 그리워하는 데는 아무 노력도 필요 없다.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날 보고, 그들이 원하는 온갖 다른 모습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건 어렵지 않다. 후회하고 계속 후회하고 시간이 바닥날 때까지 한도 끝도 없이 후회하기는 쉽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살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삶이 아니다. 후회 그 자체다. 바로 후회가 우리를 쪼글쪼글 시들게 하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원수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 다른 삶을 사는 우리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을지 나쁠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지 못한 삶들이 진행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의 삶도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는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물론 모든 것을 다 방문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을 다 만날 수 없으며,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삶에서든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대부분 여전히 느낄 수 있다. 모든 경기에서 다 이기지 않아도 승리가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다 듣지 않아도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 세상 모든 포도밭에서 수확한 온갖 품종의 포도를 다 먹어보지 않아도 와인이 주는 즐거움을 알 수 있다. 사랑과 웃음과 두려움과 고통은 모든 우주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된다. 우리는 그저 눈을 감은 채 앞에 있는 와인을 음미하고, 연주되는 음악을 듣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다른 삶에서처럼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살아 있으며, 동일한 범주의 감정에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한 사람이기만 하면 된다. 한 존재만 느끼면 된다. 모든 것이 되기 위해 모든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무한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늘 다양한 가능성의 미래를 품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자. 가끔 서 있는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자. 어느 세상에 서 있든지 간에 머리 위 하늘은 끝없이 펼쳐져 있을 테니까. 어제 나는 미래가 없다고 확신했다. 도저히 내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와 똑같이 엉망진창인 삶이 희망으로, 잠재력으로 가득 차 보인다. 살아보지 않고서는 불가능을 논할 수 없으리라. 삶에서 고통과 절망과 슬픔과 마음의 상처와 고난과 외로움과 우울함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날까? 아니다. 그래도 난 살고 싶을까? 그렇다. 그렇다. 천 번이라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현재에 더 감사하게 되는 여운, 덜 후회하도록 살기,

아름다운 영화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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