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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산책] 내가 만약 대학 총장이라면

내가 만일 단 사흘만이라도 앞을 볼 수 있다면

by 모티
"내가 만약 대학 총장이라면 '눈을 사용하는 법'이란 강의를 필수 과정으로 개설했을 겁니다.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것들을 진정으로 볼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즐거울지를 알게 해주는 강의가 되겠지요. 말하자면, 나태하게 잠들어 있는 기능을 일깨우는 겁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p23>
Photo by 이지애

<Three Days to See, 사흘만 볼 수 있다면>


53세의 헬렌 캘러가 쓴 수필입니다. 인간승리의 대명사로 거론되는 그녀는 훌륭한 작가였습니다. 이 글을 통해 시력과 청력을 잃고 살아온 긴 세월 동안 간절히 보고 싶어 하고 또 하고 싶어 했던 일을 꼼꼼한 묘사와 상상으로 아름답게 풀어냅니다. 사흘만이라도 빛을 보게 해 준 하나님께 감사하며 다시 영원한 어둠으로 돌아가겠다고 고백합니다. 세계적인 잡지[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이 에세이를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했습니다.


우리는 삶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언젠가 죽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아직 나와는 상관이 없는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앞둔 삶과 죽음을 생각해 보지 않는 삶의 의미와 시간의 밀도는 다를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진 것을 잃고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병에 걸린 다음에야 건강을 의식하고, 누군가의 빈자리에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지인의 죽음은 삶, 행복, 허무, 가족, 인생을 잠시 생각할 뿐입니다. 영원이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기에 사소한 것들에 정신이 팔려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음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오늘은 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활기차고 감사하게 보내야 함에도 삶의 무게에 짓눌려 마음의 고요함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하루하루 버텨내기도 하고 정처 없이 흐르는 데로 무심하게 살면서 시간은 지나갑니다. 지금까지 했던 선택들을 후회하면서 다른 선택을 그리워합니다. 과거를 잘 보내지 못하며, 오지 않을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에 무한 인내와 희생만을 강요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말입니다. 당연한 것이 없다는 것만 이해해도 감사할 이유가 늘어납니다. 감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했다는 방증입니다.

Photo by 이지애

보는 것의 의미


헬렌켈러는 19개월이 지나 시력과 청각을 잃었습니다. 빛과 소리는 잃었지만 건강하고 활발했던 어린 시절, 축복과도 같은 설리번 선생님과의 만남, 자연과 인류에 대한 큰 사랑, 장애인을 위한 사회사업에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그녀는 장애가 없는 친구들에게 그들이 보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해봅니다. 숲길을 오랫동안 산책한 친구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친구는 "별거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눈이 멀쩡한 사람들도 실제로는 보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촉감으로만으로도 흥미로운 것을 수백 가지나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균형을 이룬 나뭇잎, 부드러운 나무껍질, 울퉁불퉁한 껍질, 꽃송이의 부드러운 결, 나선형 구조의 신비함 등 자연의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수북하게 쌓인 낙엽과 잔디를 밟는 것도 기쁨이었습니다. 만지기만 해도 기쁨인데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볼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갖지 못한 것만 오히려 갈망하고 사는 것이 인간이라고 갈파합니다. 보는 것이 삶을 풍성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수단이 아닌, 단지 편리한 도구로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Photo by 이지애

사흘만 볼 수 있다면


그녀는 사흘만이라도 앞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그녀의 삶을 가치 있게 해 준 사람들을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둘째 날은 동튼 새벽을 경이로움을 맞이하고, 박물관을 찾아 인간의 진화 과정을 보며, 미술관에서 인간 영혼을 표현하는 예술적 작품들과 마주하고, 저녁에는 연극을 보며 희극 속 주인공을 만나며, 마지막 날은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거리와 공원을 걸으며 눈길이 머무는 것마다 놓치지 않고 붙잡기 위해 애를 쓰면서 그렇게 보내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사흘이 있다면 어떻게 보낼까 그려보았습니다. 좋은 문장이 좋은 생각을 부르는 지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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