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한 일주일을 보내고 집에서 보내는 휴식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카이로스입니다. 열심히 살았기에 휴식이 더 달콤합니다.
눈을 뜨자 갑자기 그곳을 가고 싶었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일출 명소입니다. 1년 반 동안 지나며출근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잠시 차를 멈추며 일출멍하며 감상에 젖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시간 다이어트를 하며 틈틈이 눌러쓴 글은 제 삶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비록 글을 쓰는 마음처럼 살지는 못하지만 쓴글 때문에라도 마음을 다잡기도 합니다. 부족한 사진과 글이지만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름다움을 찾아보면 주변에 많습니다. 찾는 사람에게 더 잘 보일 뿐입니다. 자연은 외면은 쉽게 허락하지만 감추인 뜻은
쉽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사색한 만큼만 얻을 수 있는 신비입니다. 시인들이 자연을 사랑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풀 한 포기에서 우주의 질서를 찾아내고 나무 한그루에서도 삶의 교훈을 끌어내니까요.
자연이 선물해 준 명화를 보며 흘려보내는 사람, 아름답다며 느끼는 사람,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사람 보통 세 종류로 나뉩니다. 흘리는 사람은 평소 감흥이 없거나 피로사회에 익숙한 채 사는 삽니다.어쩌면 자연감상을 배우적이 없어서 일수도 있습니다.10년 전에 제가 그랬으니까요. 자연을 보는 법을 몰랐습니다. 보는 눈이 있어야 감동도 하게 됨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보통사람은 아름답다고 느끼는 수준에서 머뭅니다. 기억하는 사람은 보고 또 보며 관찰합니다.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한 노력을 즐깁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에 시달리던 헬렌 켈러(Helen Keller)가 1933년 53살의 나이에 쓴 수필입니다.헬렌에게는 한 가지 간절한 꿈, 단 며칠이라도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세상을 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이 글에는 그 어떤 화려한 기교나 미사여구도 없습니다. 당연한 것에 대한 돌아봄, 익숙한 것에 대한 통찰을 주기에 큰 감동을 줍니다.
우리는 아프고 나서야, 떠나고 나서야, 잃어버리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연약함으로 살아갑니다. 삶에는 당연함이 없습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말아야합니다.우리가 누리는 모든 혜택은 누군가의 땀과 고통의산물입니다. 당연하지 않음을 알 때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매일 먹는 밥, 편안한 잠자리, 쉴 수 있는 집, 아픈 곳 없는 몸은 아내의 수고와 헌신 덕분입니다. 부부 사이에 표현하며고마움을 알아주며, 각자 역할에 충실할 때 예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로서 인식될 때 좀 더 익어가는 삶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매일 볼 수 있습니다. 들을 수도, 걸을 수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없는 것을 부러워합니다. 배우자와 아이에 대한 기대 수준은 높습니다. 못 미치면 실망한 채 하루를 날려 보냅니다. 채우는데만 욕심을 내기 때문입니다. 비우는데 욕심을 내야 할 텐데요. 나만 잘하면 되는데도 내로남불의 시선으로 살지 않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자연 보는 법, 사랑하는 법, 잘못을 인정하는 법, 나누는 법, 감사하는 법이 아닐까요.
"일찍 아름다움을 보는 방법을 알았다면 덜 힘든 20~30대를 보냈을 텐데"라는 후회도 됩니다.
후회는 후회일 뿐입니다.지금부터도 늦지 않았습니다.
비록 완벽한 일출은 담지 못했습니다. 생각하는 데로만 살 수 있는 게 삶은 아니니까요. 물오리, 비상하는 새, 꽃이 있어 다음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같은 한 시간이라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인생 책이 달라짐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