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티 정문선 Nov 10. 2021

[시 감상] 벌레 먹은 나뭇잎

나를 내어 준다는 것의 의미


벌레 먹은 나뭇잎

                     (이생진)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시집 '시인과 갈매기' 중에서>


시 한 편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나뭇잎의 구멍이 벌레를 먹여 살렸다는 안목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동안 구멍이 숭숭 뚫린 나뭇잎은 외면했습니다. 시인은 벌레 먹은 나뭇잎멋지게 위로해 주었습니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를 다른 생명을 살리는 존재로 멋지게 치환하였습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아름다움의 기준을 되묻습니다. 시인의 따뜻하고 애정 어린 관점이 좋습니다. '이타적인 삶'과 '아름다움'을 풀어낸 담박함이 사랑스럽습니다.


평생 자식을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의 거친 손, 갈라진 발바닥은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훈장입니다. 고왔던 손과 발은 풍화되어 닳고 깎였습니다. 자식을 위해 아낌없이 주셨으면서도 더 줄 것이 없다며 미안해하십니다. 벌레 먹은 나뭇잎은 어머니의 사랑과도 닮았습니다.


제 몸의 일부를 남을 먹여 살리는 데 살아온 나뭇잎, 그 나뭇잎에 뚫린 구멍으로 하늘을 봅니다. 나는 벌레 먹은 나뭇잎 같은 삶을 살고 있는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내주고 있는가.


Photo by 빛피스

#이생진시인 #벌레먹은 나뭇잎#단풍#21



매거진의 이전글 [시 감상] 사랑이라는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