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편 19장 12절
자신을 안다는 게 어디까지 일까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떨 때 즐거운지, 민감한 부분은 무엇인지 아는 정도일까요.
나를 돌아볼수록 내 안에 있는 결핍, 이중적인 마음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허물을 인정한다는 것은 부족함을 안다는 것입니다. 저는들뜬 마음을 가라 앉히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시편을 필사합니다. 하루 10분, 영혼을 다독이는 리츄얼입니다. 필사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필사가 기도가 되고, 기도가 곧 필사가 됩니다.
기도란 나의 부족함을 먼저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사도바울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다"라는 고백처럼, 나의 한계성을 직시하고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반복된 외침입니다.타인에게 돌렸던 시선을 나로 향하게 됩니다. 문제는 나의 시선, 나의 태도에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상대를 무시하며 내 고집을 부렸던 연약한 모습도 떠오릅니다.
내가 아는 지식이란 극히 일부분입니다.타인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름에도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세월을 허비했습니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게 당연할 텐데요. 나만 옳다는 생각은 마음 수양이 부족해서 일지도 모릅니다.
책을 읽을수록 나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내가 아는 나와되고싶은나, 주변에서 보는 나는 달랐습니다. 아는 척, 태연한 척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하였습니다. 그리 기쁘지는 않았습니다.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낯선 모습도 보입니다. 초조하고 불안할 때가언제쯤 잦아들까.나이를 먹을수록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평상심은 어렵습니다. 눈을 감으면 스멀스멀 밀려오는 과거의 부유물이 보입니다. 단단한 줄 알았는데 아직도흔들림이 많습니다. 가야 할 길은 아득하고 발걸음은 무겁습니다.
공원 벤치에서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을 봅니다. 바람이나뭇잎을 흔들며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없습니다. 가지가 많을수록 바람 잘 날이 많겠지요. 생각이 많을수록 번뇌도 많을 겁니다. 물건을 정리하는 것처럼 생각도 정리해 주어야 할 텐데요. 채우는 욕심만큼 비우지는않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지도 모릅니다. 표현하니 마음의 날씨를 알게 되고, 욕망과 의식 그리고 습관 사이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납니다.
허물있음을 인정합니다.받아들이며현실과 이상의 차이를메우기 위해 정진합니다. 겸손하게 성장하여 나눔 있는 삶을 살고 싶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