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기억 못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 조지 산타야나 -
말만 앞서는 사람
'작심삼일'은 어릴 때 별명이었습니다. 무엇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말만 번지르했습니다. "말은 그럴싸해"라며 아버지는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초등 5학년 방학 때 대학생 삼촌에게 아버지는 공부습관을 지도해달라며 부탁했습니다. 저는 하루, 이틀 좀이 쑤셔 좀처럼 가만있질 못했습니다. 3일 지나 안하면 안 되냐고 삼촌에게 사정했습니다. 작심삼일이라 불린 이유입니다. "머리는 있는데 하지 않는다"며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중고등 때는 시험 전 바짝 벼락치기로 영수는 반타작, 나머지는 암기로 만회했습니다. 성실함과는 먼 학창 시절입니다. 버티는 연습, 성취감이 적은 것이 20대 불안함의 원천인 줄 몰랐습니다. 노는 것 빼고 무엇하나 치열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고민 없는 대가
고2, 문과와 이과 기로에서 아버지는 이과를 권했습니다. 고분자 박사과정에 있던 삼촌이 내심 조카를 끌어주길 바랐습니다. 취직이 낫다는 권유로 이과에 갔습니다. 10년을 돌아가는 길이 될 줄 몰랐습니다. 대학은 나와야 된다는 부모님 생각에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좋지 않은 성적에 맞춰 들어간 대학은 '무니만 대학생', '먹고 대학생'으로 회자됩니다. 대학 7년,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습니다. 대학 1학년은 등록금을 기부했고, 군대를 다녀오면 열심히 하겠노라며 자유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수업은 듣지 않았고 당구장, 호프집, 농구장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새벽까지 일하며 밤낮이 바뀐 채로 지냈습니다. 당구비, 술값, 노래방, pc방에서 생활해야 했으니까요. 마치 오늘만 있는 것처럼 원 없이 놀았습니다. 유유상종이란 말처럼 제 주위는 음주와 노는 것을 즐기는 친구와 선배들만 있었습니다. "지금 놀지 언제 노냐", "군대 가기 전에 마음껏 즐기는 거야" 서로 덕담(?)을 나누며 함께 연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가끔 저를 걱정하는 선배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쾌락은 짧고 고통은 길다
대학 1년을 날리고 2년 후 2학년에 복학하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기초가 없어 전공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수학, 화학 단어만 들어도 고구마를 10개를 먹는 것처럼 답답해집니다. 극도로 싫어했던 과목을 전공하니 적응할 턱이 없었습니다. 들어도 이해되지 않았고, 수업시간이 시작하면 그만 나가고 싶다는 충동과 싸워야 했습니다. "하면 되겠지"라며 나름 버텼지만 성적은 노력만큼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루함과 자괴감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며 출석하는데 의의를 두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답을 적지 못해 당황하는 꿈을 꿉니다.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과거 시간이 부메랑 되어 내 발목을 잡았습니다. 대학 입학부터 열심히 하는 동기들도 쉽지 않은 전공과목을 속성으로 접근했던 것이 오판이었습니다. 모르니 안 하게 되고 안 하니 즐겁지 않은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라며 합리화하는 제가 싫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커졌습니다.
10년을 돌고 돌아
교양과목으로 선택한 인문 수업은 노력에 비해 성적이 좋게 나왔습니다. 수업에 흥미도 생기고 교수님 말씀을 한자라도 놓칠세라 제일 앞에서 열공했습니다. 전공수업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만 교양수업은 내가 선택해서 흥미가 생기니 하루에도 흐림과 맑음이 반복되었습니다. 교양수업인 언어, 역사, 인문 등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과보다 문과가 맞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인생의 진로에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 달랑 대학 졸업장 한 장 남겼습니다. 전공과는 무관한 일반직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된 이유입니다. 공과대학을 나왔음에도 10년을 돌고 돌아 행정 공무원을 준비했으니까요. 그렇게 들어온 직장, 8년 동안 많은 고비를 넘기며 버티다 결국 넘어졌습니다.
경험을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어떤 일도 시간 낭비는 아니다.
- 오귀스트 르네 로댕 -
늦은 때란 없다
저는 말만 앞서는 사람, 고민하지 않으며 20대까지 살았습니다. 내공이 없으니 작은 바람에도 흔들려야 했습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휴직한 지 한 달째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나를 지킬 힘이 없이 평생 남의 눈치를 보며 살 수 있겠구나", 가족을 위해서도 기존에 익숙한 것과 결별을 해야 했습니다.
편안 길만 찾았던 습성, 노력한 것 이상의 욕심 , 술과 사람에 의지하며 껍데기만 쫓는 삶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와 모든 것과 대면해야 했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지었다가 와르르 무너진 것처럼 다시 집을 지을 수 있을지 두려웠습니다. 많은 책에서 나와 비슷한 경우가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비슷한 고민과 생각으로 버티며 견디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죽을 것처럼 힘든 고통도 타인의 더 큰 불행에 비추며 애써 위로했습니다. 유사한 과정을 이야기가 나를 다독여 주었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이 누군가에겐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음도 배웠습니다.
쓰러지기 전을 기억합니다. 지속적인 긴장과 불안, 사람들이 나를 이용하려는 것 같은 느낌과 수군거림, 사소한 것도 버겁게 느껴지는 무기력증, 내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감정조절이 되지 않는 예민함이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계속 나타나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불면과 우울이 생각과 마음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헛되이 보낸 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누구나 넘어질 수 있습니다. 넘어짐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입니다. 마음이 아파 혼자 끙끙 앓다가 병을 키웠습니다. 몸과 마음의 소리를 외면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고서야 얼마나 어리석게 살았는지 통곡해야 했습니다.
담배 피운 시기만큼 지나야 니코틴이 빠진다고 합니다. 축적한 시간이 없는 만큼 더 달려야 남들만큼 될 수 있다는 강박적 부담이 정신을 지배했습니다. 나에 집중하며 리셋하는데 3년, 생각이 바뀌는 데는 5년은 족히 걸렸습니다. 좋은 시간들이 좋은 습관을 낳았습니다. 받기만 익숙하다가 조금씩 나눠주는 삶이 되었습니다. 책 전도사가 되었고, 독서인과 교류하면서 생산적인 시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외상 후 성장이 되도록 절차탁마했던 시간이 축적되어 빚어지는 중입니다.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힘써라.
- 알버트 아인슈타인 -
오늘이라는 시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1,440분은 쉼 없이 흘러갑니다. 하루 30분을 나에게 주지 못한다면 잠시 멈추며 돌아봄이 필요합니다. 정밀진단이 필요한 때일지도 모릅니다. 하인리의 법칙처럼 내게 오는 이상 신호를 놓치게 되는 우를 범합니다. 결국 29번의 위험 신호를 무시하다 건물 붕괴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면서 사랑하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10분도 책을 읽지 않습니다. 10분도 운동하지 않습니다. 10분도 정리하며 성찰하지 않습니다. 머리는 빠르나 몸은 느립니다. 생각만 앞서서 느는 것은 핑계뿐입니다. 같은 패턴으로는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기초가 탄탄해야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있습니다. 기본은 소홀한 채 빨리빨리만 서두르다 결국 대형참사가 일어납니다. 나를 모른 채 달리기만 하다가 한방에 훅 갈 수도 있습니다.
하루라는 선물을 선용하려 합니다. 내면을 단련하는 공부, 몸 건강을 위한 습관과 해야 하는 일, 챙겨야 하는 것들을 배분하며 주어진 역할을 고민합니다.
내일도 알 수 없는게 인생입니다. 시간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시간은 내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시간의 주인이 되는 우리를 응원합니다.
시간은 인생의 동전이다. 시간은 네가 가진 유일한 동전이고, 그 동전을 어디에 쓸지는 너만이
결정할 수 있다. 네 대신 타인이 그
동전을 써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라.
- 칼 샌드버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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