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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 정문선 Jan 21. 2022

[노래 산책] 시간에 기대어

노래가 주는 이야기가 재생됩니다.

https://youtu.be/Vvku4AVxRRk



반복해서 듣게 되는 노래가 좋습니다. 생소한 가곡을 접합니다. 시와 곡과 소리만나 하나가 되었습니다. 가곡의 매력을 알게 하는 경계를 확장시키는 노래입니다.  

  



노래가 야기가 되다


#1

한 사람이 홀로 먼 산을 바라봅니다. 저 언덕을 넘고 세월의 강을 거스르며 화면은 젊은 부부의 삶을 비춥니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열심히 일해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식솔이 많은 대가족의 일원이 된 아내는 집안일, 농사일에 쉴틈이 없습니다. 가세가 점점 기우는 종손 댁은 빛 좋은 개살구였으니까요. 저녁 늦게까지 삯바느질을 해서라도  벌어야 합니다. 지난한 삶, 무뚝뚝한 남편 보며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온 세상이니.


남편은 아내가 고맙습니다. 시집온 후로 옷 한 벌 제대로 사주지 못했습니다. 둘 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도 없습니다. 아이가 줄줄 태어난 후는 아내가 더욱 바빠졌습니다. 어른들 눈치에 아이들도 안아주질 못했습니다. 유교 문화, 가부장에서 자란 남편은 표현에 서툽니다. 아내의 바람막이가 돼주지 못합니다.  


#2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형편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농사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남편은 일자리구하러 도시로 떠났습니다. 몇 년 동안 홀로 사는 삶은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위해 감당할만했으니까요. 한 번씩 시골에 내려가는 것이 낙이었습니다.  


#3

혼자 생활하는 남편은 외로웠습니다. 심한 몸살이 걸려 출근하지 못한 어느 날, 회사 동료가 음식을 싸와 걱정해  주었습니다. 그 이후 그녀와 자주 시간을 보내며 웃는 날이 많습니다. 혼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녀는 포근하고 성실한 남자가 좋습니다. 유부남인 줄 알지만 끌리는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둘만 있는 시간이 점점 깊어져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4

아내는 10년 동안 기러기 남편에게 미안했습니다. 자주 찾아가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최근에는 한 달에 한 번도 뜸합니다. 가끔은 나를 보는 눈빛이 떨립니다. 여자의 육감이 깨어납니다. "아니겠지. 어떤 사람인데. 내가 무심해서 그럴 테지"



며칠 후 맘먹고 음식을 들고 남편집에 갔습니다. 아내는 혼동스러웠습니다. 잘 정리된 집, 누군가와 함께 사는 흔적들이 보였습니다. 털썩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가지고 간 짐을 그대로 들고 돌아오다 길가에 버렸습니다. 서럽고 서러웠습니다. 온 세상이 사라졌습니다.


#5

시어머니께 어떡하면 좋냐고 하소연을 해봅니다. 시어머니는 그리 놀라지 않습니다. "어쩌겠냐. 남자가 밖으로 도는 것은 여자도 문제가 있다"라며 아들 편을 듭니다. 억장이 무너집니다. 마을에도 두 집 살림을 한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는데 현실이니 막막합니다. 밥을 먹어도, 일을 해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맨 정신에 잘 수 없어 못 마셨던 술도 배웠습니다.


#6

남편이 왔습니다. 남편은 일 때문에 당분간 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내는 조용히 습니다.

"당신..... 나한테 할 말 없어요"  한참 동안 정적이 흐릅니다. "제가 현모양처는 못돼도 시집와서 지금껏 뼈가 부서저라 일했어요. 아이들 아니면 당장 나갔을 거예요. 앞으론 당신 없다고 생각하며 살 거예요.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조강지처 버려서 잘된 사람 없어요. 벌 받을 거예요. 당신"


#7

그렇게 소원해져 버린 부부 관계, 변해버린 사랑 앞에 서로를  지워야 했던 삶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고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아내의 삶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계절이 수없이 바뀌고 아내 얼굴의 검버섯이 늘어갑니다.


#8

남편은 중병을 얻어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죽음 앞에 무너져가는 남편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 아빠니까요. 아내의 정성에 남편은 점차 기력이 회복되었니다. 건강해진 남편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기로 하였습니다. 남편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뜨거운 사랑도 덧없음을 알았습니다. 좋을 때만 사랑인 것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불행의 긴 터널에서 벗어난 듯 60이 넘어 다시 설레는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9

헤어졌던 시간만큼 아내와 보낸 시간이 지나자 아내는 점점 야위어 갔습니다. 그렇게 삶을 내려놓으며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스러져가는 아내를 보며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아픈 것에 책임감을 느낍니다. 곁에서 있어주는 것 밖에 없습니다. 아내는 이름이 없는 채로 70 평생을 살았습니다. 사랑이 끊어진 세월이 못내 후회됩니다. 편을 의지하지 않고 술에 의지하는 삶은 죽음이라는 청구서를 내밀었습니다.


아내가 목소리가 떨립니다. 마지막 꺼져가는 촛불처럼 얼마 남지 않는 시간에 나직하게 읊조립니다.  


"난 기억합니다. 그리고 추억합니다. 소원해진 우리의 관계도 내겐 아픈 그리움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잘나도 내 사랑, 못 나도 내 사랑.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나 떠나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당신과 다시 사랑한 시간을 추억하며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로 남아줘요. 우리가 보냈던 장소가 기억나요. 언덕, 강가, 논과 밭, 곳곳에 우리의 흔적이 있을 거예요. 지금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먼저 가서 미안해요. 다시 태어나도 당신을 선택할 거예요. 사랑해요. 여보" 


꽃잎이 휘날립니다. 그렇게 눈을 감습니다.


#10


시간에 기대어도 아내가 그립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도 부족한 인생이었음에 야속합니다. 쾌락은 안은 채로 인생을 사는 것은 가혹합니다. 음악이 흐릅니다. 남편의 뒷모습이 비춥니다. 부부가 함께 보냈던 사진과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흐릅니다.




글의 모티브는 후회와 그리움입니다. 남자는 나약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연습이 없는 세월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좋을 때만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동거 동락하며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는 것이 사랑입니다. 남편의 잘못된 선택은 여러 사람의 인생을 어둡게 하였습니다. 후회하며 되돌리기에 시간은 내편이 아닙니다. 그리워하며 잊어야 하는 후회노래가 되었습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몇 개의 장면으로 노래를 풀었습니다. 노래가 주는 영감을 붙잡으며 덜 후회하도록 읽고, 쓰고, 사색하며 생각을 덧칠합니다. 간은 당신 편입니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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