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을 할 수 있고, 반드시 해내야 된다고 하면 우리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 아브라함 링컨 -
2017년 5월 1일 정례조회, 드디어 발표의 순간이었다. 300명이 넘은 직원 앞에서 첫 순서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이 엄습했다. 두려움은 점점 몸을 굳게 만들더니 급기야 태풍의 눈이 되어 온몸을 삼킬 태세였다. 공동 발표자도 긴장한 상태가 역력했다. 그때였다. 옆에 있던 선배가 편안하게 하라며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놀랍게도 두려움이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으면”하는 바람뿐이다.
한 달 동안 발표 구상부터 역할 분담, 내용 보완, 시나리오 작업, 발표 연습까지 많은 것을 해야 했다. "청중들 앞에서 당황하지 않으면 된다"라고 되뇌었다. 발표 자료를 다시 훑어보았다. "어떤 장면을 남길 것인가"마치 저격수가 되어 청중의 가슴에 공감이라는 총알을 명중시켜야 했다.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섰다. 먼저 파트너가 매끄럽게 출발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5초가량 호흡을 가다듬으며 평소 톤보다 나지막하게 시작했다.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전남에서 가볼만한 곳은 어디입니까?"라는 물음에 머뭇거리며 관광정보센터로 안내했습니다. 그러나 전화하는 분 입장에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받는 사람이 친절하게 응대할 수 있다면 전남 관광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T/F팀이 생긴 이유입니다.그렇게 6개월 동안 20명의 직원이 의기투합하였습니다. 22개 시군에 흩어져 있는 관광자원 31,400개를 모았습니다. 여행지 설명, 교통 안내, 맛집, 숙박시설까지 한 장에 담은 관광자원카드 1,532개를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500개의 여행 코스를 개발하였습니다." 그렇게 번갈아가며 발표가 이어졌다.
경청하는 분위기를 보며 흐름에 몸을 맡겼다. 어색함 없이 무난하게 발표를 마쳤다.
평소 무뚝뚝하던 지사님께서 “한 번 듣기는 아쉬우니 직원들에게 전파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그렇게 길었던 ‘발표 10분’은 잊지못 할 기억의 한 장면이 되었다. 다 쏟아부었기에 후회도 없었다.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관광과에서 근무할 때다. 직원들은 하루에도 수 십 통씩 받는 전화가 있다. “요즘 전남에 가려면 어디가 좋습니까?”, “여기 OO인데 음식점 추천해 주세요”, “요즘 하는 축제는 뭐가 있습니까?" 직원들은 한결 같이 “네. 관광정보센터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라며 전화를 돌린다.
김 팀장님의 응대는 달랐다. 최대한 상세하게 직접 설명을 해주셨다. “사람들의 요청에 바로 응대한다면 전남에 대한 만족도는 훨씬 클 것이다. 어쩌면 아주 기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라는 이유였다.
며칠 후 팀장님은 ‘관광코스 개발을 위한 T/F팀 운영' 3장짜리를 기획서를 건네주셨다. 대략 난감했다. 총괄은 팀장님, 내가 간사를 하며 운영하자는 것이다. 국(局) 직원 20명이 일주일에 2번씩 모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내용이었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지금 있는 업무량도 부담되는데 잘 될 수 있겠습니까? 다른 과 직원들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라고 직언을 드렸다. 잠시 후 팀장님께서는 “윗분들께 보고를 드려보자. 꼭 필요한 일이니 팀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참여하도록 국장님께 건의를 드릴 테니 한 번 해보자" 라며 등을 두드렸다.
함께하는 동료는 여성 특유의 부드럽고 안정된 톤으로 발음이 정확했다. 오히려 내가 피해를 주지 않을까 내심 걱정되었다. 딱딱한 목소리와 경직된 표정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녹화 영상을 보니 동작과 표정은 책을 읽는 것처럼 한심했다. 응급 처방을 해야 했다. 도정뉴스를 진행하는 후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2시간 특별훈련을 받은 후 부족한 점을 생각하며 연습에 열중했다.
“싸울 날을 예비하여 마병을 준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나이다. 잠 21:31
발표는 큰 스승이었다. 한계를 내가 만든다는 것과 한계를 넘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함을 가르쳐주었다. 틈나는 대로 발표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반복했다. 발음, 성량, 호흡, 동작, 표정..... 온통 부족한 것 투성이었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6개월 동안 고생했던 동료들의 땀과 수고까지 담고 싶었다. 막힐 때마다 발표 달인 선배들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이쯤이면 되겠지”라는 안일함을 경계했다. 가족 앞에서 발표하며 더 나은 방법을 찾았다. 제대로 된 연습만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았다. 연습이 충분히 되어야 임기응변도 되는 것이다.
간절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하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하다”는 의미다. 정례 조회를 통해 ‘간절함’이란 단어를 마음 깊이 새겼다. 발표를 마친 순간은 잊을 수 없다. T/F팀을 운영하면서 힘들었던 순간들이 생각이 났다.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지난 한 달 동안 고통스러울 정도로 부담이 되었다. 오죽하면 2주 사이 3킬로가 줄었다. 발표 하루 전에는 공중목욕탕에서 잠수하여 숨을 참으며 발표 연습을 했다. 극한 상황에서 할 수 있어야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오직 연습뿐이었다. 2017년 5월 1일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두려움이라는 큰 산을 간절함이라는 연습을 통해 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