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만 하는 독서는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다. 금방 사라지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앞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 어려운 책은 단어부터가 생소해서 읽는 동안 "읽어야 하나"와 씨름해야 한다. 독서 내공이 상당한 선배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씩 내부 게시판에 꾸준하게 책을 소개했다. 책의 줄거리와 옮긴 문장을 포함하여 20페이지 내외였다. 그것으로도 대략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바쁜 중에도 틈틈이 책을 읽고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책을 나누는 선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엄두가 나지 않고 의지로만 되는 일도 아니었다. 평소 방대한 독서량도 놀라웠지만 읽은 책을 정리해서 올리는 일은 마치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불현듯,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성장하기를 바랐지만 생각뿐이었다. 정체된 현실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기분 전환도 할 겸 서점에 들렀다. 책을 뒤적이다 서문부터 강렬한 책을 만났다. 힘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책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디자인한다는 내용이었다. 저자가 겪었던 상황에 감정이 이입되었다. 흡입력이 있어 단숨에 읽었다. 밑줄이 없는 페이지가 없을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속담처럼 읽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렸다. 구색을 위해 소감까지 넣으니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감동의 여운은 길었다. 그렇지만 타자 치는 일은 빠르기는 하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있었다.
선배의 향기
평소 바쁜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으며 나누는 모습, 생활에서도 본이 되는 선배의 모습은 큰 귀감이 되었다. 책 읽는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아서인지 선배의 노력은 외롭게 핀 민들레를 닮았다. 바람이 불자 흩날리는 홀씨처럼 게시판에 반응하는 직원들이 하나둘 씩 늘어났다.
일면식만 있는 선배에게 평소 독서후기를 잘 읽고 있다는 감사 인사와 처음으로 요약했던 내용을 메일로 보냈다. 이틀 만에 답장이 왔다. 정리 내용이 잘 되었다며 열심히 해보라는 당부, 부족한 부분에는 애정 어린 조언도 있었다. 먼저 경험을 한 선배는 시작하는 후배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저런 선배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강렬한 등불 빛을 발하여 선박 또는 항공기에 육지의 소재, 원근(遠近), 위험한 곳 등을 명시해 주는 등대와도 같은 존재였다.
<메모 독서법>을 만나다.
저자는 2012년부터 메모&노트 쓰기를 시작하여 메모에서 비롯된 독서법, 독서노트를 꾸준히 쓰는 사람이다. 2015년 말에 발간한 첫 번째 책 <메모 습관의 힘>은 자기 계발 분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메모 독서법>은 저자의 첫 책 중에서 ‘메모 독서’에 궁금해하는 독자들을 위한 책이었다. 독자들을 위해 책에 밑줄 긋는 요령부터, 메모 독서의 효과, 독서노트를 쓰는 방법, 메모 독서를 습관화하기까지 메모 독서의 핵심 내용을 담았다. 독서습관의 변화와 ‘성장 독서’에 관심 있던 나를 위한 맞춤 책이었다. 지금까지 독서방식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책을 참고하여 나만의 방식으로 독서 노트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책을 발췌할 때는 검은색, 떠오르는 생각이나 질문과 대답 등은 파란색, 아이디어와 실천할 내용은 빨간색 볼펜을 사용하기로 했다. 첫 책으로 <메모 독서법>을 골랐다. 독서 노트는 몇 권의 책을 읽은 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타자로 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손가락도 아프고 고된 작업이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일으켜 주는 문장이 있었다.
한 순간이 아닌 오래 지속될 성과를 얻는 독서를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메모 독서에 투자하는 시간은 여러분의 독서 생활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메모 독서법 중>
책 한 권을 정리하니 단순히 읽기만 하는것은 얼마나 편한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어떤 일이건 처음이 어렵다. 비행기는 이륙할 때 전체 연료의 70% 이상을 소비한다고 한다. 비행기가 뜨면서 강력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고도에 접어들어 수평으로 진행하면서 평균 연료소모량이 줄어드는 것처럼 무슨 일이든 마음먹기가 그렇게 힘들다. 오죽하면 “시작이 반이다”라고 했을까?
한 번의 성공은 자연스럽게 다음 책으로 이어졌다. 김종원 작가의 <사색이 자본이다>의 밑줄 친 문장을 필사하며 의미를 곱씹었다. “사색이란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지며, 본질을 알고 사랑하는 모든 행동의 정수”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사색하는 사람은 누구나 보지 못한 것을 보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읽을수록 삶의 태도와 사랑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고마운 책이었다. 사람 관계로 힘든 상황에서는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가 큰 위로를 주었다. 공감에 대한 이해와 도움이 되는 유용한 정보들이 많아 지인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30년 이상의 정신과 의사로서 진료 경험과 트라우마 현장에서 지내면서 기록한 처절한 고백서이자 공감 지침서였다. 굳이 전문가를 찾아가지 않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쓰게 되었다는 저자의 글은 내게 ‘공감’과 ‘경계’에 대한 큰 가르침을 주었다.
독서 노트만 봐도 책을 다시 읽는 효과가 있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독서 노트가 요긴했다. 독서노트를 보는 것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생각이 만나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때는 이런 생각도 했네", "나중에 글쓰기 보물창고가 될지도 몰라" 손 때가 뭍은 독서노트는 책 요약 이상의 많은 것을 내게 주는 든든한 친구였다. 그러나현실적인 제약이 생겼다.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인내의 과정으로 매번 하는 것은 무리였다. 고민 끝에 3 회독 이상 읽은 책으로만 정했다. 필사의 다양한 효과를 경험했기에 평소는 20분 내외로 '주요 문장과 시' 필사를 실천하고 있다. 밑줄 긋고, 생각하고, 찾아보며 어렵게 얻은 지식은 오래 기억된다는 걸 체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