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사는 것은 현대인의 숙명이라지만, 잠시 하늘을 올려보며 여유를 찾는 것은 선택이다. 열심히 사는 이들이 번아웃 증후군에 맥을 못 추는 것도, 행복강박증에 시달리는 것도 어쩌면 잠깐의 '쉼'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어른의 무게> 중에서
강박과 불안은 내 몸에 붙어있는 장기처럼 나와 함께 했다. 불안은 조급증을 부르고 결국엔 건강을 해쳤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은 무너지고서야 알았다. 하인리의 법칙은 큰 재해가 일어나기 전 반드시 작은 재해의 징후가 존재한다며 1:29:300의 법칙으로 불린다. 큰일이 터지기 전에 300번의 사소한 사고, 29번의 작은 재해가 나타난다는 원리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세한 신호를 포착하여 큰 일을 대비한다. 작은 신호를 포착할 수 있으려면 예민한 감각이 필수다. 예리함은 절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관찰과 노력 그리고 제대로 된 경험의 산물이다.
번아웃 이후 조급증 극복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였다. 산책과 필사, 걷기와 독서로 틈틈이 쉼을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도움이 필요한 일, 단기적인 일과 중장기적인 일로 나누어 시간을 배분했다. 하루 시작과 끝에 5분씩 정리하며
방향을 점검했다. 일과 시간에 쫓기는 삶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으려면 미리 준비하고 실력이 뒷받침돼야 했다.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으며 일에 강약을 조절하며 페이스를 유지했다.
내가 겪었던 거센 고통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순간이 온다는 걸 시간은 가르쳐 주었다.몸에 생긴 브레이크는 살기 위한위험표지판이다. 조금 무리하면 몸은 다양한 방식으로 쉼을 권한다. 숨을 고르며 호흡을 조절하는 것처럼 작은 노력만으로 생각의 질주를 막을 수 있다. 여유는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하루에 10분이라도 의식적인 노력을 했다. 바람맞으며 하늘 보기, 음악 들으며 호흡 가다듬기,틈틈 책 읽기, 떠오른 생각 적기, 좋은 문장 나누기,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 등 자투리 시간에 밝은 기운으로 덧칠했다. 하루라는 회색빛 배경이 점점 밝은 톤으로 바뀌고 그림마다 여백이 늘었다. 쉼의 반복은 성취감을 넘어 회복탄력성까지 향상돼 삶의 밀도가 달라졌다.
남보다 늦게 성장을 갈망하고 기본을 다시 쌓아야 했던 지난 삶은 제 때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한 반작용으로 나를 옭아맸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멈출 수 없었다. 새벽마다 알람을 맞추고 자기계발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몇 년을 보냈다. 함께 교육을 받은 동기가 문득 건넨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너의 삶은 충분히 괜찮다"
자기 계발서는 한결같이 강조한다. 투입이 어느 정도 쌓여야 전환점이 오게 된다고. 먼저 경험한 사람들에 배우며 실행이 답이라고. 오은영 박사의 금쪽 상담소에 발레리나 김주원이 나왔다.하루 3시 반의 스트레칭과 30분의 반신욕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35년 동안 발레와 함께한 삶을 들려주었다. 몇 년 전 그녀의 발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발레리나의 화려한 삶 뒤에 감춰진 굳은살과 멍으로 얼룩진 기형적 발 모습이었다. 고통 없이 얻어지는 훈장은 없다. 경험해봐야 고통의 크기도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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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김주원은 있지만 인간 김주원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발레를 너무 사랑했기에 은퇴의 두려움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많은 것을 포기하며 몸짓으로 관객과 소통하며 견뎌내었을 삶에 애잔하기도 하였다. 남들보다 뛰어난다는 건 그만큼 희생과 인내의 보상이리라.
1년 전부터 휴일에는 알람을 맞추지 않는다. 일어나는 시간에 따라 리츄얼을 바꾼다. 충분한 수면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걸 체득해서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인정 욕구는 줄이고 성장을 위해 에너지를 쓴다. 나도 좋고 상대도 좋은 일을 고민한다. 책을 소개하고, 좋은 문장을 나누고 주말엔 독서소모임에 참여한다. 틈틈이 독서커뮤니티를 운영하고 목표가 있는 분들과 교류하며 생각의 경계를 넓힌다. 일상 사색으로 생각의 곁가지를 솎아 글로 남긴다. 치열하게 사는 것이 현대인의 숙명이라지만 질문 없이 사는 삶은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난파선과 무엇이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