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하루하루 소멸하는 삶을 산다. 배터리가 수명을 다하면 교체되는 상황과 비슷한 인생이다. 세월이 흐르자 가까운 동료가 하나둘 회사에서 사라졌다. 먼지처럼 사라지는 내 모습도 자연스럽게 그려본다." <어른의 무게> 중 발췌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시간에 풍화되는 얼굴, 몸 그리고 인생까지, 어느 하나 무한한 것은 없다. 지금 잘 나간다고 으스댈 것도 아니고, 힘들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다. 밤이 가고 낮이 오듯 인생의 희로애락은 반복될 뿐이다. 어차피 인생은 크게 보면 하루하루 기쁨과 슬픔의 연속선상에 있는 작은 점을 연결하는 것이 아닐까. 연결은 궤적으로 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2년 전부터 틈틈이 글쓰기를 시작했다. 몇 년간 축적된 독서샘은 쓰는욕망을 분출시켰다.막상 쏟아낸 글은 다른 버전의 일기였다. 쓰면 쓸수록 한계를 느꼈다. 재능 없음을 알게 되고, 남보다 몇 배는 노력해야 결과물을 내밀수 있었다.40대에 장착한 성실 친구를 의지해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지만 임계량은 한참이나 모자란다.
또 다른 이유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40대 중반에 은퇴준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연한 불안감에 끌려다니기보다 경쟁력을 만드는 일을 고민했다. 직장의 다양한 경험과 책이 만나자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마음 아픈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였을까. 자기 계발*동기부여 분야에 애착이 갔다. 첫 테마는 부침 많았던 30대 좌충우돌을 독서 경험으로 극복한 콘셉트를 구상했다. 비슷한 길을 가며 방황하는 직장인에게 작은 이정표를 주고 싶었다.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고 싶어 기초체력을 다지지만 주변에서 출간한 분들의 노력량을 알기에 멈칫거리기도 한다.
2년 전, 운 좋게 장기교육과 코로나는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어 최적의 글쓰기 여건이 마련되었다. 호기롭게 어린 시절의 아픈 상처를 연료 삼아 글을 썼다. 문인협회 선배의 권유와 첫 항해를 할 수 있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너덜너덜한 내면 아이와 만난 첫 사건으로 기억한다. 이후 책의 바다를 유영하면서 출간된 책을 하나씩 만났다.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절제가 요구되는지 알게 되었다.
아내는 내게 진득하게 몰입하는 것이 독서와 글쓰기라고 했다. 25년 넘게 시간을 나누었던 아내는 건강이 염려되니 적당히 하라는 당부와 함께 내가 글쓰기에 집중하니 남편을 뺏긴 것 같다고 투덜거렸다. 글쓰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 독서 이후 몰입의 기쁨을 맛봤다. 5시간이 훌쩍 지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은 자주 오지 않아선지 글쓰기는
연단의 과정이었다. 글이 삶이 되고 삶이 글이 되는 단계는 하늘에 있는 별만큼 멀었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인생을 배우는 기회이자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는 고마운 습관이었다. 글감을 모으고 구상하며한 편씩 생산하는 기쁨이 컸다. 차분하고 관찰력이 좋아진 것은 덤이었다.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도 글 쓴 이후 달라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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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면서 자존감을 찾았고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었다. 밋밋한 직장생활이 상부상조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일에 대해 의미와 가치를 찾자 밥값은 한다는 기본엔진과 자기 계발이라는 성장엔진을 장착할 수 있었다.
직장에 올인하며 풀베팅 한 때가 있었다. 남보다 앞선 욕망과 시간을 거스리는 욕심은 화를 불렀다. 빈털터리가 되고서야 정글과도 같은 냉혹한 현실을 목도했다. 나를 지키는 힘과 최소 자본은 남겨둬야 했음을 알았다. 워크홀릭이라 불리며 직장에 모든 것을 갈아 넣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직장 무대를 빨리 인식할 수 있을 때 남은 삶이 계산될 것이다.
누구나 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간다. 직장이란 굴레에 갇혀 있는 동안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 유예할 뿐이다.건강하게 독립할 수 있는100세 시대를 위해서도 장한이 작가님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지난한 세월을 달관한 듯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최대한 초라하지 않게 사라지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