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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산책] 어쩌면 우리 모두는 온갖 매서운

힘겹게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내일을 살아갈 기적이 된다

by 모티
구례 화엄사 홍매화
로키산맥 해발 3천 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 지대가 있다고 한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너무나 매서운 바람 때문에 곧게 자라지 못하고 마치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한 채 서 있단다. 눈보라가 얼마나 심한지 이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그야말로 무릎 꿇고 사는 삶을 배워야 했던 것이지. 그러나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은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온갖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나름대로 거기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며 제각기의 삶을 연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민숙아, 너는 이제 곧 네 몫의 행복으로 더욱더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라고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중>


멈추게 되는 문장이 있다. 물이 끓어 주전자 뚜껑을 밀어 올리듯 문장이 주는 여운을 어떻게든 붙잡고 싶다. 저자는 아끼는 제자의 뒷모습이 눈에 밟혀 온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쓴다. "어차피 한 사람이 느끼는 행복의 양에도 한계가 있고 최고의 행복조차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별로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듯이, 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절망에도 한계량이 있는 모양이다"라며 위로를 건넨다.

장영희 교수는 태어날 때부터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1급 장애를 안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교수이자 수필가, 번역가,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며 삶을 사랑으로 가득 채웠다.


그녀는 『문학의 숲을 거닐다』, 『내 생애 단 한번』 같은 책을 통해 따뜻한 문장으로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했다. 2004년 초에 척추암 선고를 받고 2004년 9월부터 2006년 5월까지 3년의 시간을 항암치료와 투병생활을 하며 다시 돌아오기까지 매 순간이 기적이었다고 고백한다.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내었다고. 그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겠다고 한다.


하버드대 방문 시절, 장애인으로서 부당함을 겪은 그녀는 미국 대형 부동산 회사를 상대로 싸워 승리함으로써, 장애인의 권리를 당당히 외쳤다. 그녀의 이야기는 미국 언론에 소개되며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말기 암 진단 후에도 “봄을 기다린다”는 말처럼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임종 직전,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선천성 중증장애가 있는 딸을 위해 아낌없이 모든 걸 주었던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그의 몇 줄짜리 짤막한 편지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마음의 빚을 진하게 담았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집필을 마쳤다. 책은 출간 이틀 만에 완판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부재를 슬퍼하며 그가 남긴 ‘기적 같은 하루’들을 마음에 새겼다. “희망은 운명도 바꾼다”는 믿음으로 독자들에게 끝없는 용기를 주었다.


장영희 교수님은 누구보다 아팠지만, 누구보다 따뜻했다. 그녀의 글엔 험에서 우러나온 새겨 두고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이 가득하다. 항상 '희망'과 '사랑'이 있어 읽다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하게 된다.


교수님은 비록 2009년에 작고하셨지만 지금도 많은 독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


“괜찮아. 너, 그렇게 살아도 돼.”


그 한 문장에, 나는 또 부끄럽지만 감사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40편의 에세이는 끊임없이 말한다. 우리가 지금 힘겹게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바로 내일을 살아갈 기적이 된다라고.


#문장산책#장영희교수#기적#달음#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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