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마음의 그릇 키우기
중학교 시절, 나는 테트리스 고수였다. 90년대 초반, 동네 오락실은 나의 작은 전장이자 은신처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락실로 달려가 하루의 스트레스를 블록 쌓기로 풀었다. 빠르게 떨어지는 조각들을 맞추고 지워내는 쾌감, 그 짜릿함은 공부나 시험에서 느껴보지 못한 성취감을 안겨줬다. 게임에 몰입하면 어느새 주변엔 구경꾼들이 몰려들었고, 나는 마치 작은 영웅이라도 된 듯한 기분에 들떴다. 물론 부모님의 걱정도 따랐다. “그 정성이면 자격증 하나쯤은 땄겠다.”는 말은 늘 따라붙었고, 오락실 주인도 자리를 오래 차지하는 나를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이 단순한 게임이 내 삶과 감정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될 줄 몰랐다. 테트리스는 단순한 규칙을 가진 게임이다. 다양한 모양의 블록을 회전시키고, 빈틈없이 수평선을 맞추면 그것이 사라진다. 초반에는 느긋하지만, 레벨이 올라갈수록 블록은 속도감 있게 떨어지고, 한순간의 망설임도 용납하지 않는다. 긴장과 집중, 빠른 판단, 그리고 무엇보다 제때 비우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감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매일 같이 직장에서 수많은 감정 블록이 떨어진다. 갑작스러운 상사의 호출, 예고 없이 떨어지는 업무, 예상 밖의 회의 요청 등은 정신없이 떨어지는 감정 조각들이다. 때론 무심코 쌓아 둔 불안이나 짜증, 피로가 쌓이고 쌓여 결국 감정의 천장에 닿는다. 그 순간, 게임은 종료된다. 중요한 건 완벽한 플레이가 아니라, 감정을 때에 맞춰 인식하고 정리해 내는 능력이다.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유연함. 그것이 진짜 고수의 태도다.
부딪힘의 기술, 언어의 온도
감정은 꼭 일에서만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자주, 가까운 관계에서 자주 충돌한다. 나와 아내는 성향이 정반대다. 아내는 계획적이고 논리적인 반면, 나는 즉흥적이고 감정에 충실한 편이다. 아내는 일을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처리하니 몰아서 하는 나와 부딪혀 갈등으로 이어졌다. 아내가 “이거 언제 할 거야?”라고 물을 때, 나는 그것을‘지적’이나 ‘잔소리’로 받아들였고,“알았어, 그만 좀 해.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라며 날카롭게 반응했다. 감정 표현의 미숙함이 문제였다. 내 감정이‘짜증’이 아닌,‘압박감’이나‘부담감’에서 온 것임을 설명하지 못했다. 반대로 아내의 “답답해”,“눈치가 없다”는 단정적인 말투가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렇게 감정은 설명되지 못한 채 부딪히고 흘러넘쳤다.
직장도 비슷하다. 의견 충돌, 비효율적인 지시, 기분 상하는 말투.... 하루에도 수차례 감정파도가 요동친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사람이 평생 배우는 게 걷는 거랑 감정 다루는 거야.”라는 대사처럼 감정조절은 본능이 아니라 기술이다. 우리는 감정을 잘 다루기 위해 ‘정확한 언어’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짜증 난다”는 말 대신, “지금은 좀 여유가 없어서 그 말이 부담스럽게 들려”라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은 상대를 향한 날이 아닌 이해를 위한 대화로 전환된다. 언어는 감정의 온도를 낮추는 훌륭한 도구다. 때로는 적절한 단어 하나가 억울함을 덜고, 관계를 지속시키는 울타리가 된다.
감정의 서랍, 그리고 경험이 주는 힘
직장인은 대부분 감정노동자다. 하루에도 수십 번 사람의 표정과 말투를 읽고, 때로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상황을 넘긴다. 민원인의 한마디, 상사의 찌푸린 표정 하나에도 마음은 요동친다. 책 <감정도서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감정은 이름을 붙이는 순간, 다스릴 수 있다.”이 말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리의 머릿속엔 수백 개의 감정 서랍이 있다. 기쁨, 즐거움, 설렘, 자부심, 사랑 같은 긍정의 감정과 분노, 수치심, 두려움, 질투, 우울 같은 부정의 감정, 그리고 동시에 복합적으로 겹치는 양가감정까지. 우리가 상황마다 정확한 감정 서랍을 열어 단어를 꺼낼 수 있다면, 감정 표현은 훨씬 자연스러워진다. 마치 테트리스에서 다음 블록을 미리 보는 것처럼, 감정도 미리 인식하고 준비할 수 있다면 당황하거나 폭발할 일도 줄어들 것이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숀(로빈 윌리엄스)은 상처 많은 윌(맷 데이먼)에게 반복해서 말한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이 단순한 문장은 감정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결정체다. 감정은 탓하거나 억누르는 대상이 아니라, 알아차리고 다독여야 할 내면의 언어다. 감정표현이 서툴렀던 시절, 그 대사는 마치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감정의 그릇을 키운다는 것
테트리스는 완벽을 요구하는 게임이지만, 동시에 언제든‘새로운 판’을 시작할 수 있다. 감정도 그렇다. 순간의 격앙이 관계를 흔들 수 있지만, 감정은 다시 조율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거나 쌓아 두는 것이 아니라, 넘치기 전에 정리하고 새롭게 쌓는 것이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 있고, 표현 방식의 차이일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건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크기’다. 내 감정의 그릇이 작으면 타인의 감정을 담을 여유도 없다. 테트리스를 잘하기 위해 자신만의 분석과 감각이 필요하듯, 감정의 고수란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고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삶은 매일 이어지는 테트리스다. 어떤 날은 멋지게 지우고, 또 어떤 날은 엉망으로 쌓는다. 그러나 중요한 건 점수가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다. 오늘도 감정의 블록은 쏟아진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내 안의 감정을 차분히 맞추어 간다. 그리고 마침내, 경쾌한 소리가 쉼 없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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