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식으로 사랑 톺아보기
1. 사랑에도 철학이 있을까?
사랑은 늘 어렵습니다. 누군가에겐 설렘이고, 누군가에겐 책임이며, 또 다른 이에게는 희생입니다. 관계와 가치관, 그리고 각자의 경험이 뒤섞여 사랑의 정의는 사람 수만큼 다릅니다. 플라톤은 사랑을 네 가지로 나눴습니다. 아가페(신적사랑), 스토르게(부모사랑), 에로스(이성 간 사랑), 필리아(우정)입니다. 여기에 저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더하고 싶습니다. 생리학적으로 사랑은 페닐에틸아민, 도파민, 옥시토신 같은 호르몬과 연결됩니다. 흔히 ‘콩깍지가 벗겨지는’ 시기를 3개월에서 3년으로 보기도 합니다. 물론 이 기간을 훌쩍 넘어 평생 금슬을 지키는 이들도 있습니다. 당신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어떤 얼굴로 먼저 떠오르나요? 나만의 사랑관이 있으신가요?
2. 나의 개똥철학
관심(1단계) → 관찰(2단계) → 관통(3단계)
제 경험과 주변의 이야기에서 일정한 패턴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관심입니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이 생기면 우리는 자연스레 시선이 머뭅니다. 더 알고 싶어 질문하고 귀를 기울입니다. 둘째는 관찰입니다. 음식 취향, 말투, 표정, 예민했던 순간을 조심스레 기억합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때 힘들어하는지, 작은 단서들을 모읍니다. 셋째는 관통입니다. 눈빛만으로도 마음의 상태를 읽습니다. 목소리의 떨림과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감지합니다. 돋보기가 빛을 모으듯, 주의와 애정이 한 점으로 모입니다. 영화 <그녀(Her)>의 대사가 이 단계를 잘 말해줍니다. “나는 당신의 과거와,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 그리고 당신이 가고 싶은 미래를 다 사랑해요.”서로의 생각을 꿰뚫어 보는 것, 저는 그것을 ‘관통’이라 부릅니다.
3. 사랑의 다양한 얼굴
사랑은 대상에 따라 다르게 변주됩니다.
신적 사랑은 조건 없이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수용과 신뢰입니다. 이성의 울타리를 넘는 믿음의 영역입니다. 극한의 순간, 우리는 지푸라기를 잡듯 절대자를 찾습니다. 기도할 대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삶은 버틸 힘을 얻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대개 과잉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아기의 숨소리 하나에도 잠을 설칩니다. 아이가 앓으면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하는 마음으로 한밤 중 응급실을 달려갑니다. 양육의 시간은 아이의 기질과 특성을 알아 가는 관찰의 연속입니다. 아이의 부족함을 내 탓으로 여기며 겸손을 배워갑니다. 맹자의 말처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생명을 대신하고 싶을 만큼” 절절합니다.
연인의 사랑은 종종 이유를 초월합니다. 운명 같은 만남도, 연민에서 시작된 애정도, 친구 같은 동행도 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이기적인 ‘나’는 작아지고, ‘너’의 비중이 커집니다. 취향을 맞추고 함께라는 안정감에 익숙해집니다. 만나고 헤어지면서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관통’에 이르면 작은 흉터와 결핍까지 “그게 너니까”라며 품게 됩니다. 부족한 부분은 내가 채우면 된다는 너그러움도 생깁니다.
동료애와 우정은 함께 겪은 시간에서 자랍니다. 직장 동료와의 관계도 처음엔 단순히 일 때문에 얽히지만 비슷한 생각이나 유머 코드가 맞으면 관계가 발전됩니다. 힘든 일을 극복하는 과정에선 전우애도 생깁니다.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발 벗고 도와주기, 상대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은 특별한 관계로 이어집니다. 몇 달 만에 전화해도 친구의 목소리는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심리적 안정제가 됩니다. 있는 그대로 나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과의 사랑은 의외로 뒷전으로 밀립니다. 저도 번아웃을 겪기 전까지는 제 마음에 무심했습니다. 자존감이 무너지자 불안감은 커졌고, 회복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식단 조절, 규칙적인 운동과 수면, 그리고 감정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언제 기쁜지, 어떤 상황에서 상처받는지 데이터가 쌓이자 ‘막연한 나’가 ‘구체적인 나’로 바뀌었습니다.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마음은 한결 안정되었고 작은 성취를 동력으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갔습니다.
4. 사랑은 애씀의 연속
사랑은 관심에서 시작해 관찰을 거쳐 꿰뚫어 보는 관통까지 이어집니다. 다만 이 과정은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지 않습니다. 날씨가 매일 다르듯, 마음의 흐름도 출렁입니다. 어떤 날은 한 걸음이 가볍고, 어떤 날은 제자리에서 오래 머뭅니다. 그래서 사랑의 다른 이름은 ‘기다림’ 일지 모릅니다. 시나브로 상대를 향하는 진심과 배려가 쌓이면 든든한 관계로 발전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조금 더 오래 시선을 두고, 더 귀를 기울이고, 더 마음을 내어줄 때 사랑의 온도는 서서히 오릅니다. 저는 그 과정을 ‘스며듦’이라 부릅니다. 기대는 낮추고 그릇을 키우며 더 자주 웃으려 합니다. 사랑은 평생 풀어야 할 문제이자, 끝내 정답을 단정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도 철학이 있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믿습니다. 제 개똥철학 3관(관심, 관찰, 관통)이 누군가의 사랑 관점에 작은 실마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만나는 사람,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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