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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해빗 p-사람] 함께 물든 시간의 기록

일로 만난 사람들

by 모티


새로운 시작의 문 앞에서


2014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첫날, 집과 가까운 곳에 배치되어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출근했다. 지난 6개월은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을 보내 만감이 교차했다. 낯선 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컸다. 어느 책에선가 사람이 단기간에 변할 수 있는 것이 새로운 환경, 만나는 사람, 배움에 대한 열정이라고 했다. 2가지는 충족되었으니 배움에 대한 열정을 되새겼다. 교육원에서의 임무는 단순해 보였다. 교육생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며 성장을 돕는 일. 그 단순함 속에는 끝없는 고민이 파생했다. 교육생과 강사와 소통하며 목소리를 들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실행했고, 어려운 것은 동료들과 지혜를 모아 방법을 찾았다. 과정시작 전에 진행하는 오리엔테이션에서는 기본 전달 사항 외에 업무에 도움이 되는 책, 감동적인 영상을 소개하며 시작을 응원했다. 교육생 대부분은 승진을 위한 교육 이수와 휴식 차원이었다. 그래서 강의에 집중하는 교육생은 30%를 넘지 않았다. 목표가 없는 교육은 강사도 힘들고, 교육생도 지루해했다. 교육생에게는 최소한의 태도를 부탁했고, 강사에게는 교육생의 정보, 관심사를 미리 제공해 접점을 찾았다. 강사 섭외를 위해 기존의 DB, 설문 결과, 타 기관 담당자의 도움을 받았고 시간 날 때마다 책과 유튜브, 잡지 등에서 강사 정보를 수집했다. 현장에서도 답을 찾았다. 교육생이나 강사에게서 추천받은 새로운 강사는 가뭄에 단비처럼 목마름을 해갈해 주기도 했다. 인기 강사는 최소 두 달 전, 일반 강사는 한 달 전에 섭외했다. 과정마다 신규로 20% 정도를 유지하도록 목표를 두었다. 그러나 강사료가 타 기관보다 낮아 섭외에 어려움도 많았다.‘저평가된 우량주’를 찾는 심정으로 강사를 발굴했다. 쉬는 시간 교육생들의 반응을 살펴 강의 평가 결과와 함께 강사에게 피드백도 주었다. 특강에는 인지도가 높은 강사는 최소 3개월 전에 섭외해 두었다. 작은 변화가 하나둘 쌓이자 교육원이 달라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교육생과 강사의 접점, 그 사이에서


설문 결과도 단순 지표가 아니라 강사의 다음 강의에 도움이 되는 피드백으로 건넸다. 어떤 강사는 강의 후 내 사무실을 찾아와 차를 마시고 갔다. 작은 대화와 소통이 신뢰를 쌓았다. 그때 강사에게 부탁했던 일곱 가지 원칙은 지금도 선명하다.


1. 지식보다 경험과 지혜를 전해 주세요.

2. 핵심 메시지로 간결한 정리 부탁합니다.

3. 짧은 영상, 음악, 작은 이벤트도 좋습니다.

4. 교육생 반응에 따라 시간을 조절해 주세요.

5. PPT는 내용은 간결하게, 이미지는 강렬하게 부탁합니다.

6. 일찍 끝낼수록 반응이 좋습니다.

7. 교육생의 고민을 알수록 강의 만족도는 올라갑니다.


윌리엄 엣츠는 말했다. “교육은 양동이에 물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나 역시 단순히 지식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강사와 교육생 모두가 작은 불씨를 가져가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대사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야. 그러니까 서로 좀 이해하고 살아.”


교육 현장도 다르지 않았다. 서로의 사정을 이해할 때, 배움이 선순환이 되었다. 먼 길 달려온 강사에게 김밥과 음료수를 내밀고, 급히 떠나는 강사에겐 껌과 생수를 챙겨 드렸다. 어떤 날은 장문의 편지를 써 재능기부를 부탁했다.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대접하며 다음 날 함께 출근한 경우도 있다. “이런 대우는 처음”이라며 환하게 웃던 강사는, 다음 날 강단에서 가진 열정을 모두 쏟아냈다. 그 정성은 모두에게 전해져 ‘인생 강의’라는 평가를 받았다. 강사를 위한 작은 배려가 교육생에게 더 크게 돌아왔다. 강의가 끝난 뒤 반응도 다양했다.


“이런 수업을 만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강사님을 보며 식었던 열정을 돌아보게 되었네요”,

“현장에 돌아가면 다 잊어버리곤 했는데, 오늘 교육받은 내용을 다시 읽어 봐야겠네요.”


진심이 통한 것 같아 감정이 차올랐다. 강의마다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졌고, 교육생의 만족도도 우상향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은 ‘스며듦’이었다. 한 방울의 물감이 종이에 스며들듯, 내 작은 정성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번져 갔다. 강사의 시간과 교육생의 마음, 그리고 나의 손길이 만나 색이 겹겹이 쌓였을 때, 강의실의 분위기는 활기가 있었다.

일로 만난 사람들, 이어지는 인연


그 시절 만난 인연은 지금도 이어진다. 시간이 흘렀지만 “전남에 오면 꼭 당신이 생각난다.”는 연락을 받을 때면 그때로 돌아간다. 12년 전 만났던 한 교육생은 그 당시 내가 했던 말을 다시 들려주었다. “눈빛이 살아있으니 잘하실 거예요.” 그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교육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강사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나는 공직 생활의 또 다른 의미를 배웠다. 적성에 맞는다는 말도 내가 만들 수가 있음을 알았다. 일은 단순히 나를 지치게 하는 고단한 의무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후배들에게 말한다. 공무원교육원 근무 전과 후로 나의 공직 생활은 뚜렷하게 나뉘었다고. 스스로 찾은 열정은 적성을 이긴다고. 그곳에서의 값진 경험은 내 삶을 단단하게 다져주었고, 지금까지도 살아가는 힘이 된다. 그때 만난 인연이 점점 자라나 다양한 성과로 이어졌다.


일로 만난 사람들이 결국 내 삶을 다양한 빛깔로 물들여 인생의 지도를 넓혀주었다. 작은 노력이 처음엔 미약했지만 진심이라는 씨앗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연결되는 관계가 될 수 있음을 배우게 되었다. 일은 단순히 업무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의 하루에 의미를 더하고, 마음에 온기를 남기는 일이다. 나 하나 꽃 피웠던 마음이 주변을 온통 꽃밭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음을, 나는 그 시간들을 통해 배웠다. 조동화 시인의 <나하나 꽃피어>라는 시가 내게 특별한 이유다.

#코어해빗#사람#일상관찰#시간#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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