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해빗 p-혼자 있는 시간] 고요의 충만함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 - 아티스트 데이

by 모티

자연과 고요에 접속하다

우리는 늘 무언가에 쫓긴다. 알람 소리에 하루를 시작하고, 일과 관계 그리고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쉽게 방향을 잃는다. 그러다 보면 정작 중요한 '나 자신'의 목소리를 놓치기 쉽다. 작년에 운명처럼 <아티스트 웨이>를 만났다. 이 책에서 '모닝 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라는 방법으로 지친 이들의 창의성을 깨우는 법을 일러준다. 나는 특히 '아티스트 데이트' 개념에 영감을 받아, 한 달에 하루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쉼의 날'을 만들었다. 그날은 누구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별다른 계획도 없다. 대신 목적 없는 산책을 하거나 느릿하게 책을 읽고, 사소한 글을 끄적이며, 숲 속에 가만히 머물러 본다. 그렇게 온전히 느슨한 하루를 보내며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평소에는 마치 여러 배역을 혼자 소화하듯 바쁘게 지낸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 분주하게 지내다 보면 내 안의 목소리는 점차 잦아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쉼의 날만큼은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고 천천히 숲길을 걸으며 자연의 소리에 귀를 연다. 신발을 벗고 흙길을 맨발로 걸으며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흙의 촉감을 느끼고, 나무 벤치에 누워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살랑거리는 바람을 온몸으로 만끽한다. 그렇게 자연이라는 거대한 충전기에 온전히 접속한다.


어떤 날은 낯선 동네의 골목길을 천천히 거닐거나, 집 근처 단골 서점에 들러 느긋하게 책을 읽는다. 1시간 남짓 닿는 바닷가를 거닐며 자연 명화를 감상한다. 이렇게 분주함을 내려놓으면 뜻밖의 영감이 찾아오곤 한다. 떠오르는 생각들은 메모하거나 사진으로 남겨 두며, 언젠가 쓸지도 모를 글감으로 모은다. 함께도 좋지만 혼자는 더 좋다. 나는 쉬는 날을 만들어야 비로소 사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이 쉼의 날이 손꼽아 기다려져 한 달의 좀 더 단단해졌다.

나만의 공간에서 누리는 카이로스


격주로 맞는 주말 아침이면 단골 카페 창가 자리에서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 책 한 권으로 여유를 만끽한다. 때로는 창밖으로 활기찬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한 시간쯤 책을 읽고 느긋이 글을 쓰다 보면, 머릿속을 채우던 생각과 감정이 흙탕물이 가라앉듯 맑아진다. 혼자 있는 이 시간은 나를 비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채우는 시간이다. 쌓였던 피로와 잡념이 빠져나가고 흐트러졌던 내면의 질서가 다시 잡힌다. 정신적으로 일종의 '리셋'이 되는 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을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삶의 리듬을 되찾아 주는 작은 의식으로 여긴다. 글을 쓰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기도 한다. 몰입의 시간, 카이로스*를 누린다.


한때는 반드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야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영감은 낯선 장소가 아니라 낯선 시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동네의 오래된 골목이나 집 근처 공원의 벤치, 심지어 오후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까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과는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마치 훌륭한 사진가가 같은 장소를 반복해 찍으며 미묘한 변화를 포착해 내듯이, 나도 익숙한 일상 속에서 작은 새로움을 발견해보려 한다. 삶은 매일 비슷해 보이지만, 시선을 달리하면 풍경도 달라진다. 이제 나는 적게 들이고 큰 결실을 바라지 않는다. 대신 한 장의 사진이나 한 줄의 문장에도 온 마음을 쏟는다. 그렇게 정성 들여 쌓아 온 기록들은 결국 온전히 나만의 이야기가 되고, 언젠가 그 기록이 다시 나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이처럼 나 자신과 재회하는 시간이다. 그 과정은 조용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 목소리로 나를 정의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웨이』의 저자 줄리아 캐머런은 "당신은 원래 창조적인 존재였다. 다만 그걸 잠시 잊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가슴속 다짐으로 품고 산다. 혼자 있는 시간은 그렇게 잊고 지냈던 '낯선 나'를 다시 불러내는 시간이다. 고요 속에서 무뎌졌던 감각과 상상력이 서서히 되살아난다. 고요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붉게 물든 저녁 하늘 아래에서 늘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오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충만하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세상으로부터의 후퇴가 아니다. 잠시 멈춰 서야 더 멀리 볼 수 있듯, 고요 속으로 들어가야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카이로스(출처 – 네이버 브리핑)

그리스어에서 ‘때’를 나타내는 카이로스와 크로노스가 있으며, 전자는 ‘시각’을, 후자는 ‘시간’을 가리킨다. 카이로스는 일순간이나 인간의 주관적인 시간을, 크로노스는 과거부터 미래로 일정 속도·일정 방향으로 흐르는 연속한 시간을 뜻한다. 카이로스는 결정적 순간이나 특별한 기회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교육·경영·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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