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해빗 p-존재] 존재로 깨어나는 순간들

가위, 바위, 보와 같은 삶

by 모티


한 그루 나무가 긴 시간 바람과 계절을 견디며 천천히 자라듯, 사람의 존재도 일상의 풍파 속에서 조금씩 성장한다. 그러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건강검진을 마치고 결과지를 펼쳐 들었을 때였다.


몸이 보내온 작은 신호들 ― '가위'처럼 삶을 가르는 깨달음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것들도 그날따라 나를 문득 멈추게 했다. 건강검진을 마치고 받아 든 결과지에는 과체중, 콜레스테롤, 간 수치, 고지혈증… 평소 접하지 않던 의학 용어들이 빼곡했다. 그 낯선 단어들은 마치 포승줄처럼 엉켜서 서서히 내 숨을 옥죄어 오는 듯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애써 스스로를 다독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내 입에서 나온 것은 아무런 변명 대신 묵직한 침묵이었다.


가장으로서 오히려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크게 뒤흔들었다. 그때 나는 존재란 겉으로 보이는 역할이나 성과가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떠받쳐 주는 숨결 같은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내 몸이 굳어 가는 만큼이나 내 존재감 역시 점차 희미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만보 걷기를 시작했고, 짬이 날 때마다 굳어 가던 근육을 깨웠다. 내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 체력이 아니라 바로 '살아 있는 감각'이라는 사실을.


그 건강검진 결과지는 내게 최후통첩이나 다름없었다. 몸은 늘 가장 먼저 삶의 불균형을 알려 주지만, 그 신호를 대충 무마해 버리는 것은 존재를 가볍게 여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큰 깨달음이란 이렇게 작고 평범한 자극에서 시작되었다. 나를 살리는 힘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작은 태도에서 나옴을 알았다.



관계 속에 드러나는 나 ― '바위'처럼 묵직함을 느낀 순간


나는 어떤 존재인가? 이 질문은 철학 교과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빈틈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얼마 전, 후배들과 공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내 경험담을 열심히 늘어놓았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는 먼저 묻지 않았다. 보고서를 쓸 때 "대상부터 생각하라"라고 가르치던 내가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로소 각성했다. 존재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늘어놓는다고 커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자리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기준을 나에게서 상대에게로 옮기면 공감대가 훨씬 커지며 마음도 기울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맡은 역할은 늘어나고 각 역할의 무게도 저마다 달라진다. 집에서는 아버지, 직장에서는 선배, 모임에서는 봉사자... 이렇게 이름표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해진다. "나는 성숙해지고 있는가?"


서둘러 자신을 증명하려 하면 거품이 끼기 마련이다. 반대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자신을 벼리면 그만큼 존재는 단단해진다. 나는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욕심보다 먼저, 내 안의 불필요한 허세부터 걷어내야 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중요한 존재임을 인정받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 경험상,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자신을 증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곤 했다. 나는 짧은 시간에 자신을 증명하려 들거나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는 사람을 신뢰하기 어려웠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떠올라서다.


결국 관계는 나를 비추는 가장 정확한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만이 조금씩 성장하고, 건강한 정체성도 그런 성찰 속에서 자라난다.



죽음이 비추는 생의 빛 ― '보'처럼 삶을 감싸는 통찰


요즘 들어 부쩍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얼마 전, 한 방송인의 유언장을 들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죽음을 떠올릴수록 삶이 한층 또렷해지는 역설이 있다. 우리는 모두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하루의 밀도는 달라진다. 사실 우리의 하루 속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음을 깨달을수록 쓸데없이 낭비하며 사는 일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의식적으로 죽음을 떠올릴수록 삶은 맑아지고, 삶이 맑아질수록 존재는 더욱 빛난다.


소유의 목록은 끝이 없지만, 존재의 목록은 놀랍도록 단출하다. 결국 내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신념, 그리고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작은 습관들뿐이다.


나는 책을 읽고 쓰며 성장하는 내 모습과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태도, 그리고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나의 땀방울이 아이들의 인생에 뿌리처럼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삶은 매일 어둠과 빛이 교차하며 우리를 단련한다. 이러한 세 가지 깨달음의 순간들을 통해 나는 몸을 돌보는 일만큼이나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자신을 성찰하고 다듬어 갈 때, 후회가 조금 덜하고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라도 건네줄 수 있으며 스스로도 '괜찮다'라고 느낄 수 있는 삶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존재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매일 조금씩 깎이고 다듬어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한 그루 나무가 긴 시간 바람과 계절을 견디며 그늘을 넓혀 가듯, 우리도 그렇게 천천히 존재로 자라나면 좋겠다.


#코어해빗#존재#글쓰기#깨달음#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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