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해빗 p - 나다운 삶] 용두야, 잘 지내지

내면아이에게 전하는 위로

by 모티

오래된 이름을 다시 불러보며


용두야, 참 오랜만이다. 이렇게 다시 네 이름을 불러보니 그동안 내가 이 일을 얼마나 미뤄왔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요즘 나는 앞만 보고 바쁘게 살아서 너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무심했던 건 아니야. 예전보다 조금은 단단해진 네 모습을 보며 “괜찮겠지” 하고 스스로를 안심시켜 왔을 뿐이야. 어쩌면 네가 더는 아프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자기변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너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손만 내밀어도 금방 사라질 듯 몸을 잔뜩 웅크리던 너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해. 야생 고양이처럼 겁에 질려 세상을 경계하던 그 작은 몸짓들. 그때 너는 늘 불안했고, 꾸준함이라는 걸 가져본 적도 없었지. 남들보다 부족해 보이는 모습, 스스로를 책망하던 너. 어린 네 입에서 “나는 이래서 안 돼”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마음 깊은 곳이 아린 듯 아팠어.


돌이켜보면 너는 어린대도 많은 결핍을 떠안았어.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집안엔 늘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지. 여러 이유로 아버지는 명절마다 외갓집에 가지 않았어. 자존심 때문인지, 무책임 때문인지, 지금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아버지의 말투와 표정이 어린 네 마음에 잘못된 이름표를 붙였다는 거야. ‘용두사미.’ 그 한마디가 너의 호기심을 산만함으로, 너의 민감함을 불안정함으로 왜곡해 버렸고, 네 안의 가능성을 오래도록 가둬두었지.


이제 와 생각하면 너를 탓할 수가 없어. 그 시간들을 네가 어떻게 견뎌냈는지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어. 네 울음과 두려움을 내가 온전히 알아줄 수 있게 된 게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돌아보면 마음 한편이 아릿해진다.


넘어지고 일어서며 배운 것들


네 방황은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어. 대도시 유학은 너에게 첫 번째 큰 시련이었지. 낯선 방은 너를 반겨주지 않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비닐처럼 삶은 늘 불안했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당구장과 농구 코트를 떠돌았고, 어른인 척 담배와 술에 기대어 ‘괜찮은 사람’인 척 하루를 버티기도 했어. 남들은 빠르게 지나가는 사춘기가 너에게만 유독 길었던 이유는 어쩌면 그 외로움을 감당할 힘이 없어서였겠지.


군대를 다녀와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에만 끌려 다녔고, 대학도 등록만 해놓은 채 나태하게 보낸 시간들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지. 남들이 어학, 자격증, 경험으로 경쟁력을 쌓을 때, 너는 계절학기로 졸업 요건을 겨우 채우며 한참 뒤처진 출발선에 서 있었어. 그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거야. 스펙은 부족했고, 성적은 평범했으며, 기본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너는 하나도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너에게도 빛은 있었어. 대학 2학년 때, 운명처럼 네 빈자리를 채워줄 사람을 만났고 사랑을 배웠지.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됐다. 네 어둠을 대신 짊어지는 일이 그 사람에겐 얼마나 버거운 일이었는지. 사랑에는 희생이 있고, 고통 없이 얻어지는 성장은 없다는 사실도 그때 깊이 배웠어. 한 사람이 바로 선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직장 생활에서도 너의 흔들림은 계속됐어. 입사 4년 차, 첫 위기가 찾아왔고 가까스로 부서 이동으로 버텼지만 9년 차의 위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지. 결국 휴직을 택했고 그제야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어. “왜 나는 넘어졌을까?” 대답은 생각보다 단순했어. 너는 실력을 제대로 쌓지 않았던 거야. 그럴듯한 겉모습 뒤에 채워진 건 공허함뿐이었다는 걸 그때야 비로소 알았지. 직장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고, 한 번 크게 무너지고 나니 다시 일어서는 데 꽤 오래 걸렸어. 게다가 “약한 멘탈”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으며 가는 곳마다 너의 이야기가 돌았던 날들. 참 잔인하더라.


그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을 순 없었어. 뭐라도 붙들어야 했는데, 그때 네 손에 들어온 게 책이었어. 책은 처음으로 너에게 든든한 친구가 되어 주었지. 저자들의 시련과 극복을 읽으며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와 작은 위로가 생겼고, 너는 다시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어. 빠르진 않았지만 꾸준했고, 그 꾸준함이 너를 살렸지.

3년이 지나 비로소 독서근육이 생겼고, 5년쯤 되자 책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생겼어. 7년이 흐르자 책은 밥을 먹는 것처럼 일상에 스며들었어. 글은 삶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었지. 물방울이 모여 양동이를 채우듯 작은 변화들이 쌓이자 다양한 열매들이 나타나는 거야. 책은 너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너의 시선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회피에서 부딪힘으로 달라졌지. 결핍도 성장의 연료가 될 수 있다는 걸 너는 삶으로 증명해 냈어.


나답게 산다는 건 결국 서로를 비추는 일

돌아보면, 지나온 시간 중 쓸모없는 경험은 하나도 없었어. 넘어졌던 날도, 다시 일어섰던 날도 모두 지금의 너를 만드는 재료가 되었거든. 그리고 그 경험들은 이제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었지. 지금의 너는 읽고 쓰는 사람으로, 글을 통해 누군가와 연결되고 위로를 주고받는 삶을 살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해.


후배들에게 꼭 말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읽고 쓰면서 실력을 키워라.” AI 시대일수록 사유와 감수성, 기록하는 힘 같은 인간다움이 더 중요해질 테니까. 강연을 하면서 나 역시 깨달았어. 무대 앞에 서는 자격이 있는지, 얼마나 부족함이 많은지를. 삶은 결국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또 받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더 바르게 살고 싶어지고, 더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어 졌지.


어떤 강사님이 말씀하셨어.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그런 사람으로 변해간다고. 완벽해서 글을 쓰거나 강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어른이 된다는 건 완전해지는 게 아니더라. 지루함을 잘 견디면서 오히려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잘못했다면 사과할 줄 알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부족하면 채워 가는 일의 연속이야. 나 혼자만 잘 살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함께 더 나은 삶을 꿈꾸기 시작하는 그 순간에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용두야, 너는 여전히 내 안에 있어. 너의 불안은 내 겸손이 되었고, 너의 눈물은 내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었어.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고, 앞으로도 평생 배울 거야. 그러니 우리, 서로를 응원하며 우리만의 속도로 조용히 흥얼거리듯 ‘나다움’의 길을 함께 걸어가 보자. 나답게 산다는 건 결국 서로를 비추는 일일 테니까.


#코어해빗#내면아이#글쓰기#나다움#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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