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해빗 p - 한마디] 나에게 하고 싶은 말

죽음을 떠올릴수록, 지금 살아 있음이 더 또렷해진다.

by 모티


메멘토 모리, 그러니 카르페 디엠


죽음을 떠올릴수록, 지금 살아 있음이 더 또렷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작 그 진실을 외면한 채 하루를 흘려보내곤 한다. 하지만 때때로 한 장면, 한 문장이 우리의 무심함을 끊어내고 “지금”을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 내가 본 한 드라마와 한 권의 책이 그랬다. 삶을 다시 세우고 싶을 만큼 묵직한 질문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드라마가 던진 질문

“다시 산다면, 나는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는 단순한 '폭력 응징 드라마'가 아니다. 47세 조폭 김득팔이 고3 송이헌의 몸에 들어가 다시 학생으로 살아가는 설정은 얼핏 가벼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현실의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송이헌은 왕따·폭력·조롱에 짓눌린 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인물이다. 김득팔은 그의 몸을 빌려 학교를 다시 가게 되면서 비로소 ‘왜’ 그 아이가 그렇게까지 무너졌는지를 이해한다. 표정 한 줄로도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절망, 친구도 교사도 외면한 폭력의 구조, 혼자 버티기엔 너무 깊었던 상처들. 드라마는 묻는다.


“그 절망 앞에서 어른은 무엇을 했는가?”


정작 피해자의 고통은 ‘징계’나 ‘사과문’으로 덮이기 쉽지만, 누군가 대신 싸워주는 단 한 사람의 존재는 그 모든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을 드라마는 끝내 보여준다. 모범생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자신만의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최세경의 존재도 그런 맥락이다. 함께 공부하고, 같이 성장하면서 두 사람은 “변화는 누군가의 작은 손길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 드라마가 전하고자 했던 핵심은 이것이었다.


"폭력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무겁고, 상처는 어른의 침묵 속에서 자란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괴로움 앞에서 모른 척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라도 손을 내밀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 나도 그 질문 앞에 오래 머물렀다.


“나는 어떤 어른으로 살고 있는가?”

“누군가의 절망에 내가 내밀 수 있는 손은 무엇인가?”




책이 던진 질문

“어떤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살 것인가”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의 <유언노트>는 ‘죽음’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움츠러드는 책이지만, 읽고 나면 오히려 삶을 더 크게 끌어안게 된다. 교수는 사고사·고독사·타살·자살 현장에서 마주한 마지막 순간을 통해, 사람이 죽음 앞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후회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가장 많이 발견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거대한 업적도, 화려한 문장도 아니다. 전하지 못한 감사, 풀지 못한 오해, 마지막 인사의 부재. 누군가를 미워한 채 시간에 맡겨 버린 일, ‘다음에 말해야지’ 하고 미뤄둔 고백, 바쁘다는 이유로 지나친 작은 배려들. 그런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너무나 큰 후회가 되어 되돌아온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좋은 죽음은 좋은 삶의 결과다.”


죽음을 잘 맞는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이미 잘 살고 있기 때문에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는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책장은 덮었지만 질문은 닫히지 않았다.


"나는 어떤 흔적을 남기며 살고 있는가?"


"내 말투와 태도가, 누군가의 마음에 마지막 문장으로 남아버린다면 나는 괜찮을까?"



나에게 건네는 말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내 어린 시절은 안온하지 못했고, 청소년기의 결핍은 오랫동안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직장생활 4년 차, 2009년, 모티베이터 저자의 강연에서 처음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은 불씨가 일어났다. 군대에서 팔을 잃고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 그는 ‘내가 받은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삶의 이유가 된다’고 했다. 그 말은 내게 “너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그날 이후 내 안에서 조용히 자라난 씨앗이 바로 ‘모티’다. 공직생활의 첫 10년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그 이후부터 책과 글쓰기는 나를 버티게 한 두 개의 기둥이었다. 읽고 쓰면서 나는 과거의 나와 수없이 마주했고,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는 현재의 나를 발견했다. 독서 모임을 만들고,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삶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도 그 연장선이다. 직장생활의 시행착오와 실패, 다양한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있음을 안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결국 사람으로 치유된다는 것을. 관계는 결국 사람과 사랑으로 이뤄다.


올해 7월부터 6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 줌으로 하는 글쓰기 모임 '코어해빗 프로젝트'에서 12월 둘째 주는 오프라인으로 모인다. 조금 특별한 시간을 위해 ‘유언장 쓰기’를 제안했다. 음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만 떠올려도 삶의 밀도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어느 영상에서 들었던 담담한 유언 낭독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죽음 앞에 서면 사람은 다들 비슷한 말을 한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


그 단순한 세 문장이 삶 전체를 정리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모티, 메멘토 모리. 그러니 카르페 디엠.”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은 두려움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선명히 살라는 외침이다. 언젠가를 기다리지 말고, 음에 말하려 하지 말고, 현하는 것을 미루지 말자. 언젠가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오늘 말하자. 오늘 감사하고, 용서하고, 사랑하자. 삶은 단 한 번뿐이지만, 우리는 매일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덜 후회하도록. 우리는 죽음을 상상할 수 있기에,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살아갈 날들을 위해, 죽음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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