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내 삶의 이정표
프롤로그
한 해를 돌아본다는 것은 단순히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다. 그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냈는지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 과정에 가깝다. 인생이 한 편의 긴 글이라면, 우리는 매년 새로운 종이 한 장을 받아 들고 그 위에 서툰 문장을 적어 내려간다. 어떤 날은 잉크가 번져 얼룩이 지고, 어떤 날은 지우개 자국만 남기도 하지만, 끝내 종이를 구기지 않고 다음 줄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2025년이라는 페이지는 유난히 잉크가 짙게 배어 나온 해였다.
쉽게 마르지 않는 감정들과 고쳐 쓰고 덧붙이느라 끝내 지우지 못한 문장들이 행간마다 가득하다. 수험생 부모로서 보낸 긴장의 시간, 믿음의 지주였던 멘토를 떠나보낸 상실의 아픔,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견디게 해 준 글쓰기와 신앙까지. 나는 이 한 해를 '2025년 7대 이정표'라 이름 붙여 기록해 본다. 이 사건들이 나를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으로 빚어놓았기 때문이다.
첫째, 큰딸의 고3 대장정, 그 찬란한 마침표
올해 우리 집의 시계는 큰딸의 시간표에 맞춰 흘렀다. 아이의 통학을 돕기 위해 부서를 옮기고 매일 아침 출근길을 함께했다. 차 안에서 나눈 짧은 대화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 너머, 마음의 결을 확인하는 소중한 의식이었다. 졸린 눈으로 교문을 향하던 뒷모습과 밤늦게 귀가하던 아이의 무거운 어깨를 보며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저 흔들리지 않게 곁을 지키고 묵묵히 기도하는 일뿐이었다. 뒤늦게 세운 목표를 향해 끝까지 완주해 낸 딸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아이의 인내는 나를 부모로서 한 뼘 더 성장하게 했다.
둘째, 가족, 다시 확인한 내 삶의 가장 단단한 뿌리
분주한 일상과 외부 활동 속에서도 집은 언제나 가장 안전한 항구였다. 가족은 이유를 묻지 않고 나를 지지해 주었고, 나는 그 품 안에서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올해는 가족의 소중함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절절히 배운 시간이었다. 잘해주지 못한 순간들이 떠올라 미안함이 앞서기도 하지만, 그 미안함마저 안아준 가족 덕분에 세상 속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가장의 무게를 견디면서 든든한 배경과 울타리가 되어주고자 했다. 가족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내 삶의 중심이다.
셋째, 신규 공무원 특강, ‘선배’의 무게와 보람
공직의 첫발을 내딛는 후배들 앞에 섰던 날의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걸어온 굴곡진 길을 가감 없이 꺼내놓는 일은 설렘만큼이나 큰 책임감을 요했다. 그러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경청하던 후배들을 보며 나 역시 처음 품었던 초심을 다시 만났다. 경험을 나누러 갔다가 오히려 더 많은 위로와 열정을 얻고 돌아온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멘토가 된다는 것은 그들의 삶을 함께 짊어지는 일임을 알았다. 흔들리는 후배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선배가 되겠노라 다짐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시간은 내게도 큰 공부였다. 훗날 누군가에게 지푸라기라도 되고 싶었다.
넷째, 매주 한 편의 글쓰기, 강제적 환경 만들기
하반기부터 시작한 ‘매주 한 편 글쓰기’는 나 자신과 나눈 가장 고독하고도 치열한 약속이었다. 아무리 고단한 날에도 하얀 화면 앞에 앉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글쓰기 모임은 취미를 넘어, 흐릿했던 내면을 문장으로 선명하게 벼리는 성찰의 장이 되었다. 혼자였다면 진작 멈췄을 길을 동료들과 함께였기에 끝까지 걸을 수 있었다. 의지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그 환경 속에 밀어 넣는 용기임을, 나는 다시 쓰는 사람이 되어 깨달았다. 같은 목표에 페이스메이커가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한 해였다.
다섯째, 믿음의 멘토, 장인어른과 이별
올해는 신앙의 멘토이자 나를 이끌어주었던 장인어른을 천국으로 떠나보냈다. 편안한 넓은 길보다 좁은 길을 택하며 신앙의 본질을 몸소 살아내셨던 분. 늦은 나이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고 박사 학위를 받으시며 삶으로 말씀을 증거 하셨던 모습이 선하다. 그분의 사랑과 헌신 덕분에 덜 흔들리는 삶을 살 수 있었다. 부재의 슬픔은 깊었지만, 남기신 가르침은 여전히 나를 붙들고 있다. 받은 사랑이 크기에 그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겠노라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여섯째, 유언장 쓰기, ‘어떻게 살 것인가’
글쓰기 모임에서 진행한 유언장 쓰기는 내 삶의 시선을 조금은 바꿔놓았다. 죽음을 상정하고 마지막 문장을 적어 내려가자,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선명해졌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명확해진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삶, 남겨진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살겠다고 다짐하며 그 마음을 가족에게 나누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일곱째, 내 삶을 꿰뚫는, “이제는 예수님”
세상이 요동치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들어준 것은 결국 신앙이었다. 유독 나의 연약함을 자주 마주했던 올해, 나는 내 힘이 아닌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머리로 이해하는 신앙을 넘어 삶의 향기로 배어 나오는 믿음이 되기를, 나의 노력 위에 임하는 은혜를 더 갈망하게 되었다. 생전에 장인께서는 늘 말씀하셨다. "어디까지 왔나, 당당 멀었다."2025년의 모든 과정은 결국 이 한 문장으로 귀결되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예수님.”
에필로그
한 해를 정리하고 나니, 2025년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다듬어가는 연단의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기록은 과거를 박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다.
나는 올 한 해를 돌아보며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사자성어를 가슴에 새긴다. 먼저 나 자신을 닦아야 비로소 세상과 사람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는 이치를 되새긴다. 2025년의 나는 여전히 부족했고 자주 흔들렸다. 그러나 그 흔들림 덕분에 내면을 살필 수 있었고,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려 애썼다. 글을 쓰며 나를 성찰하고, 믿음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관계 속에서 더 신중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수기(修己)'의 시간이었다면, 다가올 2026년은 그 다짐을 삶의 실천으로 증명해 가는 '치인(治人)'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앞으로도 읽고 기록하며 세상과 소통할 것이다. 쓰는 사람으로, 배우는 자로, 그리고 믿음의 길을 걷는 한 사람으로 묵묵히 살아낼 것이다. 끝으로 6개월간 매주 한 편의 글을 쓰고 서로의 독자가 되어준 글쓰기 모임 동료들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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