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해빗-p '친구'] 산행, 소중한 것 의식하기

친구와 산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들

by 모티

함께 걷는 사람


삶이 중반을 넘어서니, 더 높이 오르는 일보다 누구와 함께 걷는지가 중요해졌다. 나는 친구가 거의 없다. 중학교까지는 시골에서 지내 현재 연락하는 친구는 없고, 고등학교 친구도 두 명 정도로 1년에 한두 번 만날 뿐이다. 예전에는 그 사실이 마음 한켠을 비워두는 것 같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관계를 무작정 늘리기보다 남아 있는 인연을 더 의식하게 되었다.


작년 11월, 같은 직장에 다니는 고등학교 친구와 통화를 하다 산행을 제안했다. 근무처가 달라 몇 달에 한 번씩 안부만 묻던 차였다. 일정을 잡지 않으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때 두 번이나 같은 반이었다. 친구는 말수가 적고 조용했지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자주 어울렸다. 언젠가 친구 집에 갔을 때, 친구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차려주신 식사를 대접받았다. “사이좋게 지내라”며 건네주신 용돈까지. 고등학교 시절 자취와 하숙을 하던 나에게 그 장면은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다. 부모와 함께 사는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산행을 약속하자 기억의 파편들이 하나둘 떠올라 나는 자연스럽게 30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겨울산에서 나눈 말과 침묵


담양 추월산 주차장,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둘 다 이곳 산행은 처음이었다. 친구가 도착하기 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준비해 친구를 맞았다. 잠시 뒤, 친구는 완전무장을 한 채 나타났다. 겨울산은 특히 춥다며 온몸을 꽁꽁 싸맸다. 장갑도 없이 운동화를 신고 나타난 나를 보며 친구는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그러더니 말없이 작업용 장갑을 건넸다. 그렇게 우리는 산을 올랐다. 같은 직장이지만 근무처가 달라 얼굴 볼 기회는 많지 않다. 몇 년 사이, 우리는 세월 앞에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가장의 무게는 더 묵직해졌다.


산길을 천천히 걸으며 느슨했던 기억들을 하나둘 소환했다. 자녀 이야기, 몸도 마음도 지쳤던 시기, 가정사까지. 한 올 한 올 풀어내며 우리는 서로의 말에 집중했다. 수년 전 친구가 부러웠던 적이 있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다양한 경험을 선물한다며 친구 주도로 매년 해외여행을 갔다, 중학교 때부터 주식을 사주며 경제 감각을 키워준 이야기. 모임도 부부 동반으로 나가며 아내와 함께하려는 마음씀도 본이 되었다. 만날 때마다 배울 점이 좋았다. 직장생활 20년이 지나 우리는 비슷한 고민과 어려움을 짊어진 채 한 걸음씩 걷고 있다.


멀리서 바라본 세상


겨울 산행이라 길은 미끄러웠고 속도는 나지 않았다. 등산객도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평소 걷기와 달리기를 해온 터라 참을 만했다. 조금씩 올라갈 때마다 보이는 풍경은 달랐다. 멀리 보이는 산기슭의 운무는 마치 딴 세상처럼 느껴졌고, 하늘과 맞닿은 산봉우리는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정상에 이르자 미니어처처럼 보이는 건물과 아파트, 웅덩이 같은 강, 실선 모양의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저 공간에서 사람들은 아등바등 속도와 경쟁 속에 살아간다. 애써 오른 곳에서 경치를 조망한 시간은 겨우 5분 남짓이었다. 하지만 한 걸음이 쌓여 다다를 수 있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조급함을 이겨내며 목표에 닿아 마시는 물 한 모금. 가끔은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내려오면서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만났다. 암자와 돌탑, 나무에 묶인 리본들. 산은 속살을 조금씩 내비치고 있었다.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던 꽃을 내려오며 보았다는 고은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시선과 방향이 달라서였다.


친구가 말했다. “내려올 때 다치는 경우가 많아. 더 천천히 내려와야 하는데, 빨리 내려오다 탈이 나거든.”그리고 덧붙였다. “올라갈 때 속도의 80%로 내려오면 적당하더라. 산을 잘 타는 사람은 내려올 때 완급조절을 잘하는 사람이야.” 그 말은 산을 넘어 삶으로 스며들었다.


익어간다는 것의 의미


내려오는 동안에도 대화는 이어졌다.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 통과의례처럼 지나온 자녀들의 사춘기, 건강 걱정과 노후 준비까지. 어느새 걸음 수는 만보를 훌쩍 넘겼고, 우리는 배가 고팠다. 예전에 가본 적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떡갈비 정식의 담백함과 건강 가득한 한상은 별미였다. 한 끼를 먹어도 대충 먹고 싶지 않았다. <행복의 기원>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과 자주 먹는 것이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고 했다.


우리는 기약 없는 삶을 살아간다. ‘다음에’라는 말을 공수표처럼 남기며 정작 다음은 없는 시간 속에 산다. 그래서 이렇게 자연 속을 걸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지금 괜찮은지 물어봐주는 일은 마음 한 편의 헛헛함을 채워주는 보약이 된다.


급속 충전은 빠르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채워지는 충전이 필요하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연결되어 편리 하지만, 안온함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비록 많은 친구는 아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곁에 있는 친구가 있기에 조금 더 살 만하다. 둘 다 선뜻 시간내기가 쉽지 않지만, 분기별 한 번은 만나자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날 이후 더 잘 익어가고 싶다. 만나면 힘을 주고 다음을 기대하는 사람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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