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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 정문선 Dec 25. 2020

[일상 관찰] 특별한 순간들을 마주함

석양에서 드는 생각, 시 나눔, 코로나19  교훈

#1. 석양을 바라보다

날이 저물어 감에 안개와 노을이 오히려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한 해가 저물어 감에 잘 익은 밀감이
더욱 향기롭다. 그러므로 군자는 마땅히 인생의 황혼에 더욱 힘껏 분발하여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채근담 197>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한 해를 돌아본다.

한해라는 도화지에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빨강이라는 책, 글쓰기라는 초록, 관찰이라는 노란색으로 사색이라는 붓을 활용해 많은 덧칠을 하며 그렸었다. 일상이 매번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반추하며 조금씩 그렇게 보낸 듯하다.


#2. '시 암송'을 선물 받다.


직장 선배와 산책을 하면서 뜻밖의 감동 선물을 받았다. 평소 암송하는 시라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눈빛과 표정, 온몸으로 읊조리는 모습을 보며 '아름답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특별한 무대에 마치 초대받은 것처럼 여운이 오래도록 남았다.


시 한 편으로 인생을 그렇게 응축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동그란 길로 가다

                                                  (박노해)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기억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인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낮은 곳에 거처한 뒤에야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의 위태로움을 알 것이요, 어두운 곳에 있는 뒤에야 밝은 곳을 향함이 지나치게 드러난다는 것을 알 것이다. 평온함을 간직한 뒤에야 활동하기 좋아하는 것이 지나치게 고됨을 알 것이요, 침묵을 수행한 뒤에야 말 많은 것이 소란스럽다는 것을 알 것이다.     
                                  < 채근담 33>

선배의 시 낭송을 듣고 짧은 시로 화답했다.


                               방  문  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머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_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선배는 계절과 어울리는 시라며 한편을 더 들려주었다.


                 겨울 사랑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들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온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사람책'에 빠진 날로 각인되었다.


#3. 코로나로 멈춘 일상 그리고 교훈


코로나19의 공포는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일일 평균 확진자는 1,006명에 이르고 정부와 지자체, 의료인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서울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 3차 대유행으로 접어들면서 특별방역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5인 이상 모임은 금지하며 다중이 모일 수 있는 곳은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 특히 무증상자가 늘어나 감염경로를 추적하기 어려워 매우 엄중한 상황이다. 여러 자치단체에서 선제적으로 검사하며 감염 고리 차단을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방역 관계자는 누적된 피로와 업무과중에 힘들고, 늘어나는 환자에 비해 의료진과 병상 확보는 더욱 어렵다. 전문가들은 지금 막지 못하면 의료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어 그 피해를 짐작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얼어붙은 경제는 생존마저도 위협하고 있다. 지금은 다함께 힘을 모아야 함에도 연일 쏟아내는 각종 뉴스와 기사들은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 채 문제점만 부각시킨다. 편을 가르는데만 혈안이 되어 불안감을 증폭시키며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앞으로 6개월이 걸릴지 혹은 그 이상이 걸릴지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경제논리에 따른 힘 있는 나라에 먼저 우선권이 주어지는 현실은 씁쓸하다. 바이러스의 창궐은 물질문명의 발달의 폐해이며 역습이다. 전 세계가 협력하여 대응하지 않는다면 바이러스의 공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경제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 훼손과 환경 파괴가 지구 온난화를 불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병들어가며 신음하고 있다. 거대 자본이 잠식하며 세상을 움직이는 발전에  대한 부정적 영향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가져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기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쩌면 지금을 삶을 돌아보며 현재를 리뉴얼해야 하는 기일런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 '지금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모두

지혜를 모아 절제하며 극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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