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술 중에서(젖과 꿀을 먼저 내 삶에서)
약속된 땅(땅은 언제나 어머니의 상징이다)은 '젖과 꿀이 넘쳐흐른다'라고 묘사되고 있다. 젖은 사랑의 첫 번째 측면, 곧 보호와 긍정적 측면의 상징이다. 꿀은 삶의 달콤함, 삶에 대한 사랑, 살아 있다는 행복감을 상징한다.
대부분의 어머니가 '젖'을 줄 수 있으나 '꿀'까지 줄 수 있는 어머니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꿀을 줄 수 있으려면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일뿐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목표에 도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린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무리 심하게 말해도 과장이 될 수 없다. 삶에 대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불안도 감염된다. 이 두 태도는 어린아이의 퍼스널리티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실제로 어린아이 -그리고 어른 사이에서 '젖'만 먹은 자와 '젖'과 '꿀'을 먹은 자를 가려낼 수 있다.
_사랑의 기술(에리히 프롬) p.79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아마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을 감각일 것이다.
내 몸과 연결되어 있던 열 달, 그리고 분리되어 눈앞에 하나의 존재로 태어나 숨 쉬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아기의 탄생은 더없이 고결한 사건이 되었다.
모든 엄마는 ‘젖’과 ‘꿀’을 다 주고 싶어 한다.
좋은 것만, 달콤한 것만, 부족함 없는 것을 건네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좋은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되었다.
내가 행복해야 웃을 수 있고, 조금 모자란 것을 보아도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다.
내 마음이 메말라 있으면, 달콤한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의 말투에는, 그날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내 어린 시절은 시골이었다.
가난했고, 없는 게 더 많았다.
지금 아이에게 말해주면 역사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 웃어넘길 일이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에게는 상상조차 어려운 풍경일 테니까.
그런데도 내 기억 속의 집은 늘 시끌시끌했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추웠지만 따뜻했고, 좁았지만 안전했다.
할머니까지 함께 살던 대가족의 집은 조용할 틈이 없었고, 그만큼 사람 냄새가 가득했다.
엄마는 늘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땅부자라서 시집온 줄 알았더니, 일꾼 부자더라.”
해 질 녘까지 흙 묻은 손으로 밭을 매던 엄마를, 나는 늘 투정하는 아이의 눈으로만 봤다.
사 남매를 키우며 농사일까지 하느라 쉴 틈이 없었을 텐데, 그땐 그걸 보지 못했다.
나는 반찬에도, 옷에도, 오지 않는 엄마에게도 늘 불만이 먼저였다.
소풍과 운동회에 오지 않는 엄마를 속으로 오래 원망했다.
섭섭함이 앞섰고, 이해는 늘 뒤였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아이들의 일정에 동그라미를 친다.
소풍, 운동회, 발표회.
누가 뭐래도 그 자리는 지켜주고 싶다.
아이들이 느꼈던 내 마음을, 나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아이들은 자라며 나에게도 똑같이 투정한다. 그 순간마다 머리가 띵하다.
내가 했던 말, 내가 보였던 표정, 내가 내뱉었던 불평이 그대로 돌아온다.
그제야 나는 엄마를 다시 본다.
엄마가 나를 키우며 느꼈을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이상해진다.
엄마도 처음 엄마였을 것이다.
서툴렀고, 부족했고, 그래도 좋은 것만 주고 싶었을 것이다.
형편이 따라주지 않을 때마다 얼마나 속으로 한탄했을까.
그때의 나는 어른은 다 참고, 다 견디고, 다 이해하는 줄 알았다.
지금의 나는 안다.
어른도 그냥, 조금 더 버텨낸 아이였다는 것을.
사람은 참 어리석다.
아무리 배우고 들어도, 직접 겪기 전에는 모른다. 엄마가 되어야 엄마를 이해하고,
아이를 키워봐야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심스럽게 다짐한다.
내 아이에게 줄 ‘젖과 꿀’을,
먼저 내 삶 안에서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