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의 문장수집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by 민선미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세계의 여러 현상이 그곳에서 오직 한 번 서로 교차되며, 다시 반복되는 일이 없는 하나의 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하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떻든 살아가면서 자연의 뜻ㅇㄹ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우며 충분히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이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누구든 출생의 잔재, 시원(始原)의 점액과 알껍데기를 임종까지 지니고 간다.


데미안 p.11(헤르만 헤세)




<데미안> 책은 우리나라에서 특별히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데미안>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중고등학교때 읽었던 사람들은 해마다 데미안을 읽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어른이 되고도 느즈막하게 읽었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데미안, 데미안'이라 하는지 알았다. 나는 데미안을 읽지는 않았어도 싱클레어의 유명한 문장은 알고 있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알에서 깨아나와야 한다는 부분 말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데미안』을 읽으며 나는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가 한 소년의 성장담을 넘어, 우리 각자가 겪는 혼돈과 자기 발견의 여정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시대를 건너 잊히지 않고, 해마다 다시 불린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인간이 겪는 내면의 갈등과 흔들림은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시선이라는 껍질 안에 머문다. 안전하고 익숙한 세계에 안주하며, ‘착한 아이’, ‘괜찮은 어른’이라는 역할 속에 자신을 가둔다. 『데미안』은 그런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정말 너로 살고 있느냐고?" 그리고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그 껍질을 깨지 않고서는, 진짜 삶은 시작되지 않는다고.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고전이 되었다고 믿는다. 시대를 초월해, 늘 필요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처음 출간될 당시,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미 명성을 얻은 헤르만 헤세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작품 자체로 평가받고 싶어 주인공의 이름을 빌렸다. 이 소설은 사실상 자전적 성격이 짙은 회고록이었고, 한동안 익명의 작품으로 읽히다가 문체와 사유의 결이 헤세와 닮았다는 평론가들의 지적을 통해 그의 작품임이 밝혀졌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서라도, 이야기가 먼저 읽히기를 바랐던 작가의 태도에서 나는 묘한 진정성을 느낀다.


이 작품이 쓰인 시대는 제1차 세계대전 전후, 혼란과 갈등이 극심하던 시기였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요구되던 때. 사람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데미안』은 그런 시대 한가운데서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되는 변화를 이야기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세대 간의 갈등이 깊고, 또 다른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여전히 정답을 찾느라 바쁘고, 비교하느라 지치며, 남의 기준에 맞추느라 자신을 잃는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넘쳐나지만, 정작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쉽게 침묵한다.

『데미안』은 그 침묵을 깨운다. 밖이 아니라, ‘나’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싱클레어가 겪는 혼란은 단순한 사춘기의 방황이 아니다. 그것은 선과 악, 빛과 어둠, 순응과 독립 사이에서 갈라지는 인간의 본질적인 갈등이다. 그리고 데미안은 말한다. 모든 것은 이미 네 안에 있다고. 누군가가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누군가가 대신 선택해줄 수도 없다고. 그 말이 나는 오래 남았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인정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하고,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며 안도한다. 하지만 그 방식으로는 끝내 나에게 도착할 수 없다.


『데미안』은 결국 성장 소설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태어나기 위한 고통의 기록이다. 안전한 세계를 떠나는 두려움, 익숙한 관계를 벗어나는 외로움, 그리고 혼자가 되는 용기.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선명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싱클레어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나게 된

다. 아직 깨지지 않은 껍질, 아직 말하지 못한 욕망, 아직 선택하지 못한 길을 함께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데미안』은 오래된 책이지만, 늘 현재형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은 여전히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 앞에서 망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망설임의 순간마다, 이 책은 조용히 등을 밀어준다. 너의 길은, 네가 가야 한다고.

매거진의 이전글엄마가 되고나서 보이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