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편에 서 있는가
새해가 시작되고 나서 나는 휴대폰 화면을 여는 일이 조심스러워졌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화면을 켜는 순간, 나의 하루와는 아무 상관없는 누군가의 삶이 너무 쉽게 내 안으로 들어왔다.
인스타그램을 열면 사진과 문장이 연이어 흐르고, 카카오톡을 확인하려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누군가의 근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보고 싶어서 본 것도 아닌데 이미 봐버렸고, 그 장면들은 스쳐 지나가기보다 묘하게 마음에 남아 나의 하루 한쪽을 차지한다.
그 안에는 대체로 부지런해 보이는 얼굴들이 있다.
무언가를 시작했고, 계획을 세웠고, 이미 어느 정도는 해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 있어 보였다.
그들의 삶이 나를 향해 말을 건 것도 아닌데, 나는 괜히 나 자신의 현재를 들여다본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 시간인데 마치 뒤처지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 '나답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각자의 속도를 존중받고 싶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나답게'라는 말들이 이상하리만큼 닮아 있다.
서로 다른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같은 시점에 같은 고민 앞에 선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수없이 많은 것들을 시작하고 그만뒀다. 필사를 해봤고, 독서 기록을 남겼고, 감사일기를 썼다. 운동을 시작했고, 식단 인증을 올렸다. 누군가 아침 루틴을 공유하면 나도 따라 해 보고, 누군가 새로운 취미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들은 대부분 한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안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행동들은 모두 내 것이 되지 못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었을 뿐이다.
처음엔 내가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의지가 아니었다. 내가 정말 원해서 시작한 게 아니라 그저 유행을 쫓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할 것 같고,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아해야 할 것 같았다. 분명 나의 기준으로 선택했다고 믿었던 일들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속도와 나란히 놓이고,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결과와 나를 비교하고 있었다.
비교는 늘 그렇게 시작된다. 크게 소란스럽지도 않고, 누가 등을 떠밀지도 않는다.
'저 사람은 저만큼 해내고 있는데'라는 작은 생각 하나로 시작해 어느새 나 자신을 향한 질문으로 바뀐다.
"왜 나는 아직도 여기 있을까?"
이 질문이 반복되는 동안 나는 어느새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점검하고 평가하는 사람이 된다.
누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게 되는 시대다. 그 정보들은 자연스럽게 나와 비교할 수 있는 형태로 다가온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나는 종종 내 마음이 어디서부터 흔들렸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언제나 유행만 쫓는 내 모습이 어느 날 문득 너무 바보 같아 보였다. 마치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고 빈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나다운 것은 멀리 있지 않았다.
거창한 무언가를 이뤄내거나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지금 여기, 이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 남들이 좋다고 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나였다.
가끔은 모든 알림을 끄고 조용히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싶어진다.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굳이 알 필요 없이 내 하루의 크기만큼만 생각하며 지내고 싶다. 하지만 이 시대는 조용히 가는 사람을 특별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만 멈춰 서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이 쌓인다.
내 삶은 누군가의 복사본이 아니라 나만의 시간과 선택으로 쌓아 올린 이야기이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어느 날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오래 남는다.
그 말속에는 내가 의도하지 않은 오해가 섞인다. 그 오해는 내가 나답게 살고 있다는 믿음을 잠시 흔들어 놓는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항상 이해받는 삶이 아니다. 때로는 오해를 감수해야 하고, 때로는 설명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머문다. 모두가 각자의 미래를 꿈꾸는 시대이기에 우리는 더 쉽게 흔들린다. 비교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비교의 장면은 더 자주 눈앞에 나타나고,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를 향해 조용히 시선을 돌린다.
그래서 나는 이제 빛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내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눈에 띄지 않아도 괜찮고, 속도가 느려도 괜찮은 사람이면 어떤가. 비교 앞에서 나를 가장 먼저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특별해지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가장 정직해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남의 삶을 흉내 내지 않는 것만큼이나, 남의 기준으로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지금의 나는 나를 지키는 편에 서 있는가?"
이 질문을 놓지 않는 한, 비교의 시대 한가운데서도 나는 여전히 나답게 살고 있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