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by 민선미


카톡 알람이 울렸다. 알림은 분명히 울렸지만 나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 메시지가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열어서 숫자 1을 없애버리면, 즉답하지 못하는 내 속내를 들킬까 봐 두려웠다.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고, 그렇다고 못하겠다고 단칼에 거절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었다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생각할 시간은 필요했지만, 그 시간을 요구하는 일조차 조심스러웠다. 결국 나는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조금만 생각해 보고 다시 말해도 가능할까요?"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을 뿐인데, 마치 큰 실례를 저지른 사람처럼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 짧은 망설임 뒤에는 늘 같은 질문이 따라왔다. '나는 왜 이렇게 작은 것조차 당당하게 말하지 못할까.'


나는 오래도록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애써왔다. 부탁을 받으면 가능한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고, 상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 서둘러 대답했다.


침묵이 흐르는 순간이 두려웠다. 그 공백이 관계의 금이 갈까 봐, 나는 늘 먼저 나를 접었다. 그 선택들은 배려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두려움에 가까웠다. 거절당한 사람의 표정을 상상하면 가슴이 먼저 무너졌고, 잠시라도 망설이면 내가 부족해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할 시간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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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나는 조화롭고 싶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나를 같아지게 만들었던 것 같다. 어긋나지 않기 위해, 다르지 않기 위해, 나만의 기준을 조용히 접어두고 있었다. 내 안의 '아니요'는 점점 작아지고, 상대의 '네'를 예측하는 능력만 늘어갔다.


우리는 종종 솔직함을 미루는 대신 말을 빙빙 돌린다. "확인해 볼게요", "조금만 여유를 주세요"라는 문장 뒤에는 이런 마음이 숨어 있다. 지금 거절하면 관계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명확한 거절 대신 여지를 남겼다. 그 여지는 상대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 마음을 뒤로 미뤄두는 방식이었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나를 잠시 숨기는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나의 기준을 잃어갔다. 누군가 물었다. "너는 정말 어떻게 하고 싶어?" 그 질문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오랫동안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모든 걸 해주는 사람은 편한 사람일 수 있어도, 반드시 존중받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사랑은 희생의 총량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경계가 없는 관계는 쉽게 소모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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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지 않는 나, 언제든 가능한 나, 늘 비어 있는 나였다. 그런 모습은 겉으로는 친절해 보이지만, 사실은 나를 지우는 일이었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을 때, 관계도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나는 이제 즉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내 마음을 살펴본 뒤 답하겠다고 말하는 연습을 한다. 거절은 관계를 끊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는 것도 배워가는 중이다.


그 과정이 늘 편한 건 아니다. 여전히 메시지 알림 앞에서 망설이고, 거절의 말을 꺼내기 전에 한참을 뒤척인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망설임을 나쁘게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니까.


모든 걸 해줘야만 사랑받는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일은,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를 기르는 일이다.

불편해질까 봐 숨겼던 진짜 마음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 것이다. 내가 솔직해질 때, 상대도 비로소 진짜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가면을 쓴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진심이 만날 때, 관계는 비로소 살아 숨 쉬기 시작한다.


나는 왜 여전히 모든 걸 해줘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으려 할까. 나는 오늘, 어떤 즉답을 멈추고 어떤 진심을 선택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가슴에 품은 채, 나는 조금 천천히 가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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