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 팔순 기념으로 가족사진을 찍던 날이었다.
사진관 한쪽에서 전신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고쳐 입고 서 있는데, 문득 내가 이 집에 처음 시집왔던 날의 기분이 스쳤다. 여전히 나는, 어딘가 손님 같은 사람으로 서 있었다.
시부모님과 아들 형제가 함께 찍고, 시부모님과 손주들이 다시 찍고, 사진사는 "다음 분 들어오세요"를 반복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계속 멀찍이 서성였다. 며느리와는 따로 찍지 않았다. 내 차례는 늘 단체사진일 때였다. 그때만 잠깐 불려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왔다.
결혼한 지 24년이 지났다. 어렵게 아이를 둘이나 낳고, 명절마다 차례상을 차리고, 그렇게 며느리 노릇을 했는데도 여전히 나는 이 집의 완전한 가족이 아니었다. 누가 나를 밀어낸 것도 아니고, 누가 일부러 소외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묘하게 겉도는 느낌이었다. 이 집의 사람이면서, 이 집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세월이 흘러도 며느리는 며느리일 뿐이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걸까. 요즘은 뭐든 자존감으로 설명하려는 시대다.
상처를 쉽게 받으면 자존감이 낮다고 하고, 관계가 불편하면 자존감 문제라고 말한다. 내가 예민해서, 내가 약해서,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결론내린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건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에 더 가까웠다. 그 순간 나는 자존감과 자존심이 얼마나 다른지, 그 둘보다 더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사람들은 종종 자존감과 자존심을 같은 말처럼 쓴다.
"무조건 자존감 지켜야지."
"너는 자존심도 없냐."
하지만 둘은 다르다.
자존심은 남에게 보이는 나에 가깝고, 자존감은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누군가 무례하게 말했을 때, 끝까지 따져 묻고 이기려 드는 건 자존심이고, "내가 상처받았구나" 하고 마음을 살피는 건 자존감이다. 자존심은 나를 세워주고, 자존감은 나를 지켜준다.
그런데 그날의 나는, 자존심이 상한 것도 아니고 자존감이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 감정의 이름은 자존감이 아니라, 자기이해가 부족했던 것에 가까웠다.
나는 내가 왜 그런 순간에 더 작아지는지, 왜 그런 자리에서 더 말이 없어지는지, 왜 유난히 혼자인 느낌을 크게 느끼는지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저 '괜찮은 며느리',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명절 때마다 나는 주방에서 하루를 보냈다. 시댁 식구들은 거실에서 웃고 떠들지만, 나는 설거지를 하며 그 소리를 듣는다. 그게 며느리의 자리라고, 20년 넘게 배웠다. 딸은 편하게 앉아 있어도 되지만, 며느리는 움직여야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는 질문이 많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저 말의 의도는 뭘까,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정작 나에게는 잘 묻지 않는다.
"나는 지금 왜 불편할까."
"나는 왜 이 장면이 유독 힘들까."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을까."
자기이해는 거창한 분석이 아니다. 나를 해부하듯 파헤치는 일도 아니다.
그저 내 감정이 움찔하는 순간에 한 번 멈춰 서는 것이다.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기대를 많이 한다. 내가 까다로운 게 아니라, 관계에 의미를 많이 둔다. 내가 약한 게 아니라, 소속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걸 알게 되자, 나를 탓하는 말이 줄어들었다.
"왜 이것밖에 못 해" 대신 "그래서 서운했구나"라는 말이 생겼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여자로 태어나서, 누군가의 딸로 자라서,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나'를 내려놓고 살아왔을까.
아이를 낳고 나서 처음 몇 년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보다, 아이가 뭘 원하는지를 먼저 생각했고, 내가 힘든지보다, 가족이 편한지를 먼저 살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어디에 있지?"라는 질문 앞에서 멈칫하게 됐다.
특히 우리 엄마들 세대는 더 그랬다.
자기 이름보다 "누구네 엄마", "누구네 집사람"으로 더 많이 불렸고, 자기 취향보다 가족의 입맛을 먼저 챙겼고, 자기 컨디션보다 집안 분위기를 먼저 살폈다. 그건 희생이었고, 책임이었고, 사랑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를 잃어버리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때 깨달았다.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니라, 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흔들린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많이 달라졌다. 자기 시간을 지키고, 자기 취향을 존중하고, "엄마이기 전에 나"를 말할 줄 안다. 그게 이기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현명한 선택이다.
나를 먼저 이해해주고, 나를 먼저 챙겨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내 딸에게 가르친다.
그건 가족을 외면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나를 지키는 사람이 결국 더 오래, 더 따뜻하게 사랑할 수 있다. 조금씩 조금씩 경험하며 알게 되었다.
나는 자존감보다 자기이해가 먼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모르면서 나를 존중하는 건 어렵고, 나를 모르면서 나를 사랑하는 건 더 어렵다.
이제 나는 이렇게 나에게 묻는다.
"왜 그 말이 그렇게 아팠을까?"
"왜 나는 늘 그 자리에서 작아질까?"
이 질문들이 쌓이면서, 나는 조금씩 나와 친해지고 있다.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 그저 "그랬구나" 하고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
자존감은 오르내릴 수 있지만, 자기이해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나를 알게 되면, 나는 더 이상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날 사진관에서 느꼈던 그 감정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세월이 자그마치 24년이 흘러도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 그건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덜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