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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태영 Jul 30. 2017

길항작용과 킬레이트

양분들의 고른 흡수를 위한 기초 이해

 언젠가 국립 중앙박물관에 갔을 때 고려시대 유물을 보다가 '당삼채'에 대한 설명을 보고 매우 화가 났던 기억이 납니다. 중학교 국사시간에 불현듯 나타난 이 단어를 저는 제 또래들이 그랬듯이 그냥 '고려자기=당삼채'식으로 외우기만 했지, 도대체 당삼채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고 선생님도 자세히 설명해주시지 않았더랬지요. 

 'Chinese three color', 즉 '당나라의 세 가지 색상'이 그 의미인 걸 중앙박물관의 영문판 설명을 보고는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이해한 겁니다. 저도 참 한심하지요.....


 어쨌든 전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한자와 일본어가 난무하는 교과서에 적응하는데 꽤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 농업 서적의 태반은 일본 교재를 번역한 것들이었거든요. 게다가 좀 최신 자료라도 접할 때에는 영어까지 섞이니 더더욱 공부가 싫어질 밖에요.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칼륨'이 영어로 어떻게 번역되는지 아시는 분? 전 이 Potassium을 입에 익히는데 꽤나 오래 걸렸습니다. 저만 그런건가....


 그래서 전 나중엔 영문판 작물생리학 교과서만 열심히 봤습니다. 짧은 영어 때문에 베개 만한 영어사전을 일일히 찾다 보니 남들보다 세 배의 시간은 든 것 같습니다만, 지금도 기억은 희미해도 헷갈리지는 않습니다. 한 페이지만 봐도 잠들던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 것은 덤이랄까요(혹시나 외국계 농업 관련회사 취업을 꿈꾸거나 하시는 분들은 반드시 영문판 서적이나 자료를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길항작용' 역시 'Antagonism'이라는 영단어로 이해하시면 훨씬 쉽습니다. 어떤 비료업체들은 '칼슘을 많이 주면 마그네슘과의 길항작용 때문에 마그네슘 결핍이 생긴다, 그러므로 이 마그네슘 비료를 사셔야 한다'는 매우 단편적인 설명만으로 제품을 팔려합니다만, 양분 관리는 '각 양분 간의 균형'이 중요할 뿐 하나하나의 양분이 좋고 나쁨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길항작용 역시 이런 관점으로 봐야 하는데, 쉽게 설명하자면 여러 가지 양분들 중 '많은 놈이 장땡', 혹은 '쪽수 많은 편이 이긴다'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식물은 편식하지 않고 주는 대로 먹는다', '양이온만큼의 음이온이 같이 흡수된다'는 앞서 설명드렸지요? 자, 그러면 식물이 양이온을 흡수하는 양보다 더 많은 양이온 양분들이 투여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네, 아무래도 양이 많은 성분이 그만큼 흡수될 확률도 높겠지요. 즉, 정해진 자리를 가지고 남자들끼리 서로 앉으려고 다투다 보니 이를 적대감, 적대 작용이라는 뜻의 'antagonism'이라고 하며 농업용어로는 '길항작용'이라고 합니다.


 주요 12가지 양분 원소 중에서 암모니아태 질소, 칼슘, 칼륨, 마그네슘, 철, 구리, 아연 등은 모두 양이온, 즉 남자 이온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면 암모니아태 질소 30개, 칼슘 10개, 칼륨 20개, 마그네슘 5개가 토양에 있는데(각 이온들의 힘은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 양이온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는 10개뿐이라고 하면 어떤 성분이 가장 유리할까요?

 그렇지요, 자기들끼리 열심히 치고 박겠지만 역시 숫자가 가장 많은 암모니아태 질소가 가장 유력할 것이고, 강호동 같은 재원이 없는 이상 마그네슘의 운명은 안타까워집니다.... 그런데, 재배 농가가 이럴 줄 알고 암모니아태 질소를 빼버린다면? 칼륨이 가장 많이 흡수될 테고 그다음은 칼슘이지만, 마그네슘에게도 조금은 희망이 보이겠지요? 그런데  지금이 바로 과실을 키우는 시점이라면? 어? 질소는 줄고 칼륨과 마그네슘이 늘어서 정말 바람직한 조합이 되어버렸네요.


 자, 길항작용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시면 됩니다. 먼저 어떤 성분이 남자 이온인지, 어떤 성분이 여자 이온인지를 먼저 이해하시고 얘네들이 각자 동성끼리 싸우지 않도록 = 길항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작물의 생육 단계에 맞도록 적절한 비율로 골고루 주시면 됩니다. 용어 따윈 외우실 필요가 없어요.


 다음 공부하실 용어는 '킬레이트(chelate)'입니다. 이건 아예 처음부터 영어네요.


킬레이트는 사실 그리스어라고 합니다. '집게발'이라는 뜻이라는데요, 어떤 원소를 집게발처럼 감싸주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쓴다네요. 자, 이게 왜 중요하냐면, 미량요소의 원소적 특성과 토양의 음전하와의 관계를 보시면 쉽게 이해됩니다.

토양은 여자라니까요
그런데 미량요소들 중에는 상남자들이....

 위 그림을 보시면, 미량요소들 중 양이온(남자 이온)인 철, 망간, 구리, 아연은 양이온이 두 개씩이나 붙어있네요. 그러니 토양에 시비되면 얼마나 잘 달라붙겠습니까? 이름처럼 '미량'만 시비되는데 그마저도 토양에 착 달라붙어 있으면 식물 뿌리가 흡수하기 정말 힘들겠지요? 또한 토양 중의 산소와 결합되면 바로 산화되므로 또 흡수가 어렵겠지요. 토양 pH에 따라서도 흡수 가능성이 매우 달라지지요. 그래서 얘네들의 남성성을 가리도록 미리 다른 음이온과 결합시킨 것을 킬레이트(chelate)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래같은 흡수기작을 보입니다.

킬레이트 처리된 양분은 주로 뿌리가 내는 유기산을 통해 열리지요

 자, 이렇게 킬레이트 처리를 하면 흡수하기 어려운 양분들도 잘 흡수되도록 합니다만, 그렇게 킬레이트를 만들어주는 성분(chelating agent라고 하지요)에는 주로 EDTA, EDDHA, DTPA 등의 합성제품이나 아미노산, 구연산 등의 유기물이 있습니다. 당연히 킬레이팅 효과만 따졌을 때에는 유기물보다는 합성제품들의 효과가 월등한데요, 어떤 것으로 킬레이팅 처리를 했는지는 대부분 비료 포대에 'EDTA chelated', 혹은 'DTPA-Fe'라는 식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런 표시가 없는 제품들은 유기물 킬레이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여기에 대하여는 아직도 논란이 많습니다만). 참고로 합성제들을 좀 더 설명드리면,

 EDTA - Ethylenediamine tetra acetic acid


 EGTA - Ethyleneglycol-bis (2-aminoethylether) tetra  acetic acid

 EDDHA - Ethylenediamine-di (o-hydroxyphenyl) acetic  acid

 DTPA - Diethylenetriaminepentaacetic acid

 DHPTA - 1,3 diamino-2-hydroxypropane-tetra  acetic   acid

 

 가끔 'EDTA는 너무 약해서 DTPA 정도는 써야 돼'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합성 킬레이트 성분에 여러 종류가 있는 것은 외국의 토양 pH환경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임을 먼저 이해하셔야 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EDTA는 토양 pH가 7이하라면 충분히 효과를 보입니다만 우리나라의 토양은 pH가 8 넘는 지역이 없으므로 굳이 비싼 EDDHA나 DTPA 제품을 사실 필요없이 EDTA처리된 제품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자, 여기서 또 하나 문제. 그러면 양액재배를 하실 때에 양액용으로 들어갈 미량요소에는 어떤 킬레이트가 좋을까요? EDTA? DTPA? 아미노산 킬레이트?


 답은, '필요없다'입니다. 물은 토양이 아니라서 양이온 음이온 가리지 않고 잘 흡수한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냥 저렴한 황산철, 황산구리 등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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