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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태영 Jul 30. 2017

재배관리의 기본은 분석과 데이터

아직도 눈대중만 믿으시나요?

"내가 농사를 30년을 지은 사람이여.. 그런데 내가 제대로 키우지 못한 거라고?" 

"저는 선생님 같은 분을 일주일에 30명도 더 만납니다. 문제는 선생님의 관리에 있다니까요" 


 매년 봄만 되면 논둑에서 벼 못자리용 상토를 가지고 농가와 업체 직원 사이에 흔히 벌어지는 논쟁입니다. 

90년대 후반부터 지방 자치단체들의 보조금을 기반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벼 못자리용 상토는, 개발된 지 10여 년이 지나서야 자리를 잡아 이제는 위와 같은 논쟁은 많이 잦아들었습니다만, 시장 초기에는 본인의 재배관리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농가들 때문에 많은 업체들이 애를 먹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상토 업체의 제조상 문 제도 일부 발생했습니다만, 전체 문제에서 업체에 귀책 되는 건은 매우 적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작 업체들의 문제는, 사용자들 전부에게 제품의 특성과 사용법을 제대로 전파할 능력이 없었던 점입니다.


 농가들을 뵐 때마다 가장 먼저 '본인의 토질을 잘 알고 계시는지' 여쭙습니다만, 이는 토양과 물 관리, 환경관리의 특성에 따라 추천 비료나 시비 방식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상당수 비료업체에서는 그저 비싼 비료, 마진 많은 비료만 팔려고 하는데, 그런 접근방식이 결과적으로는 농가들로 하여금 거꾸로 싼 비료, 퇴비를 선택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점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고요? 업체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농가들은 이를 제대로 쓰지 못하다 보니, 농가들 입장에서는 괜히 돈만 더 나갈 뿐 값싼 타 비료제품이나 퇴비보다 효과를 특별히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대게를 파는 음식점에 갔더라도 가위를 안 줘봐요. 손님들은 게살을 맛있게 먹은 느낌보다는 게 껍데기와 씨름하다가 소주만 들이켜고 온 기억만 안고 나갈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제가 막상 농가분들께 토양검정 여부를 여쭤보면 실제 토양 검정을 받아본 농가는 채 10%가 안됩니다.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하면 적지 않은 분들이 이런 대답들을 하십니다. 

 "지도소 그 놈들이 뭘 알아, 지들이 농사를 짓기를 하나? 그 놈들은 그저 보조사업이나 계속 만들면 돼. 내 땅은 내가 젤 잘 알아" 

 이 대목에서 지도소 그 놈들보다(지도소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현장감을 살리려는 표현임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더 모르고 농사도 안 짓는 저는 그냥"네네, 아무러면요" 하면서 고개를 팍 떨굴 밖에요. 


 그러면서 가방에서 토양 pH미터를 가만히 꺼내서 밭둑에 푹 찔러봅니다. 여기저기 그냥 말없이 찌르고 다니면 어느새 농가 분이 따라오면서 'pH가 월매나 나와? 문제는 없는가?"라고 물으십니다. 그제야 전 "제 휴대용 기계로는 pH가 4 정도 나오는데요, 당장 시금치 뽑고 블루베리 심으셔야겠는데요? 빨리 지도소 가셔서 토양 검정받고 처방받으세요. 저보다는 그 분들이 전문가입니다"라고 답을 드립니다. 

기껏 돈들여서  설비했는데, 왜 이러냐...내 딸기....

 제가 처음 양액 재배 농가들을 만날 때에는 정말 기대가 되고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아, 드디어 질퍽질퍽한 논바닥을 벗어나서 소위 '한국의 전문가'라는 분들과 교류를 시작하겠구나' - 그리고 그런 기대는 농가와 대화가 시작된 지 10분도 안되어 산산이 깨집니다. 


 양액 처방전을 달라고 하면 열 농가 중 다섯 농가 정도는 바로 주십니다. 나머지 세 분은 어디다 두었는지 찾는데 한참 걸리고 마지막 두 분은 '그딴 거 필요 없고 그냥 내가 알아서 하는 게 낫다'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리고 이 열 분은 거의 대부분, 처방전에 쓰여 있는 각 단비의 계량에만 바쁠 뿐, 지금 공급되는 급액의 NPK 비율이 생육 초기에 적합한지 후기에 적합한지 잘 모르십니다. 더 놀라운 것은, 소위 'oo법인'이라고 하여 보조금 지원까지 받아 대규모 유리온실을 운영하는 분들 중에서도 이런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설재배시 양액 재배를 한다면, 토경 재배보다는 최대 4배까지 수확량이 많아질 수 있다. 그런데 만나본 한국의 양액 재배 농가들의 평균은 1.4배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 더 문제는 대형 온실들이다. 쓸데없이 높은 천장은 난방비를 높이고, 공중을 가로지르는 온열파이프는 뿌리 근처로 들어가야 한다. 게다가 흐린 날씨만 고민하는 농가들을 많이 만났는데, 오히려 불량한 환기가 더 문제다. 이 모든 부분들은 제대로 된 근거와 고민 없이 유럽식 온실의 도입에만 급급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설비 업자도 식물 생리학을 공부해야 한다"

는 이스라엘 고문과 그 친구들의 지적은, 저같은 얼치기에게도 많은 고민을 하게 합니다.


 제대로 된 시험 없이 주먹구구로 만든 제품과 그걸 만드는 업체들, 그리고 분석이나 재배법에 대한 고민 없이 관행과 경험에만 의지하는 농가들, 작물 생리나 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 설비 금액만 부풀리려는 일부 악덕 업자들.....어쩌면 한국의 비료시장은 이 세 가지가 교차하는 그 지점에 따라 선호도가 결정되고 그것이 계속 하향곡선을 타는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웃나라 중국만 해도 산동성 지방을 중심으로 물과 비료의 정밀 관리를 기본으로 하는 Precision farming이라는 개념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라, 유수의 글로벌 비료업체들이 속속 공장을 지어 진출하고 중국 특유의 초대형 로컬 특수비료 업체들이 줄줄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이미 중국의 비료산업은 농약 및 비료의 글로벌 전문지를 발행하고 웹사이트와 학회 운영이 활발한 등, 우리나라를 훨씬 앞서고 있는데요, 농촌 지역의 소규모 딜러에게 제품을 소개하는데도 원료가 뭔지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만 봐도 말 다했지요(이건 인도에서도 동일한 경험을 했네요).

 물론  아직은 중국 비료시장에서는 한글이 인쇄된 비료포대가 선호되는 실정입니다만, 제가 중국의 비료업체들을 돌아본 바로는 그 제품들이 만약 한국 시장으로 들어온다.....우리 업체들은 많이 긴장해야 할 겁니다.


 내 토양, 물, 환경, 관습, 품종 등을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밀 관리, 이것이 값싼 비료로도 비싼 비료의 효과를 보는 첫걸음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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