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저기... 유튜브 담당자시죠?"

표창보다 보람찼던 면접 준비생의 한 마디

by 설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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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지만 이만큼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어색하게 홍보팀의 문을 두드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지났다. 전혀 알지 못했던 분야였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관련 지식도, 네트워크도 생기고 있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족하기는 해도 나름 성과도 냈고, 그에 따른 인정도 받았으니 나름대로는 성공한 첫 직장생활을 해낸 셈이다. 가끔 동료 직원들이 "이런 신기한 경험을 하면서 가장 생각나는 일은 언젠가요?"라는 질문을 한다. 그러면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한 취업준비생과의 대화를 되새긴다.


그를 만난 곳은 회사 면접장이었다. 시험 관리를 위한 보조직원으로 파견되어, 지원자들을 위한 대기실 관리를 맡고 있을 때 그가 차례가 되어 대기실로 들어왔다. 까만 정장에 올린 머리. 대한민국 면접 '국룰'복장으로 건조하게 들어오던 그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잠시 후, 대기실의 정적을 뚫고 그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 혹시... 유튜브 담당자 아니세요?"


신기했다. 마스크까지 끼고 있어서 알아보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맞다고 대답하니 그가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아,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 시험 준비할 때도 유튜브와 블로그 보면서 많이 참고했습니다"


그가 홍보팀으로 지원을 한 것도, 나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은 내가 지난 3년간 회사 유튜브에 굉장히 많이 출연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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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영상의 20%, 인물이 출연하는 영상의 50%는 주연이든 조연이든 영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때문에 회사 내에서는 내가 관종이고, 출연을 즐긴다는 소문이 꽤나 돌았다고 한다. 카메라에 찍히는 걸 전과 기록이 남는 것처럼 극혐 하는 사람이 많은 공공기관에서, 아무렇지 않게 영상에 나오는 직원이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은 영상에 출연하는 걸 즐기기보다는, 영상에 나오는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원래부터 청중 앞에서 발표를 하는 소위 '나서는 일'을 곧잘 했다. 다만 그걸 즐긴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어쩌다 발표나 강의를 하면, 그 순간에는 에너지가 넘치지만, 발표가 끝나자마자 모든 기력이 떨어져 하루 종일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영상 출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즐긴다는 말보다는 두려움을 억제, 유예해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영상에 출연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출연료였다. 한정된 예산으로 배우를 섭외하는 것이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연예인 수준의 유명인을 섭외하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인지도가 부족한 연기자들을 섭외하는 것에도 생각보다 많은 출연료가 들었다. 편집 한 번 더 하고, 영상 하나 더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 절약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말하면 '몸으로 때운'것이다. 그나마 고도의 연기를 요하는 영상이 아니고 언행이 살짝 망가지기만 하면 되는 콩트 형태의 영상이 많아서 가능했다.


다른 이유는 내부적으로 관심을 끄는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앞서서 말한 관종이라는 소문이라든지, 자신도 영상에 출연당할까 봐 걱정이 된다든지... 이런 이야기들이 회사 내부에서 돌고 있는 것 자체가 내부 PR관점에서 상당히 유용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인기가 부족한 유튜브 채널이다. 한 번에 영상이 터지거나 팬덤이 형성되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 영상이 나왔을 때, 내부 직원들이 한 번이라도 보고 반응을 남겨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 유튜브 마케팅 강의를 들을 때도, 영상이 공개되고 초반 조회수가 알고리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을 들었다. 내부 직원들의 관심도가 바로 영상의 초반 전파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면 영상 출연이 재미가 없었으면 절대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부족하기에 스텝으로 촬영을 지원한 적도 많았는데, 결국은 콘텐츠의 기획과 출연 지원을 모두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경험이 전혀 생소했던 홍보 분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사소한 자랑이지만, 연기도 오래 하다 보니 조금씩 연기력이 늘긴 했다(^^;;). 부서를 옮기기 전 마지막 영상에서는 스스로도 발전된 연기 수준...이라고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뭔가 더 나아졌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나름 애정을 가지고 영상에 출연을 했기에, 면접장에서의 대화는 홍보팀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이었다. 공공기관 취업 준비생들에게 회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콘텐츠의 목표가 제대로 들어맞았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했었던 많은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성취감이 가득 찼던 사건이었다.


부서를 떠난 지금도 남아있는 유튜브 영상. 박제가 되어 버렸지만, 지금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냥 불편하지만은 않다. 또 혹시 모르겠다. 나중에 회사에서 마주친 신입 후배가, '선배님 영상을 보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라며 고마움을 표현할지. 그것만으로도 홍보팀에서의 3년은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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