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예민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외출할 때는 빼먹지 않고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들고 다녔다. 유튜브에서 예민한 사람은 외부 소음에 민감하니 차단하는 게 좋다는 말을 들어서다. 다른 병에 대한 의사의 말은 적당히 걸러 듣는데, 정신과 의사의 조언 하나하나는 철석같이 믿고 따라 하는 스스로가 신기하다. 아마도, 약 먹은 지 반년 지났고, 증상이 생긴 지는 일 년 지났지만, 아직도 이 상황과 증상이 어색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불면증과 근육통의 콜라보로 아침 요가를 제치고, 정신과 진료 전 동네 책방에서 글이나 쓸 까 하여 버스에 올라탄다. 뭔가 싸한 기분이 든다. 주머니를 뒤져도 이어폰이 나오지 않는다. 다시 내려서 집에 다녀오기엔 배차간격이 너무 길다. 그냥 가기로 마음먹는다.
배차간격이 길다는 것에서 힌트가 있지만, 여긴 서울이 아니다. 차가 별로 많지 않아 그렇게 시끄럽지 않아 다행이다. 버스 소리를 그대로 듣는 것이 참 오랜만이고, 뇌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나쁘지 않았다. (보통은 좋았다는 표현을 쓰지만, 사실 딱히 좋을 일도 아니다)
서점에 도착하니 갑자기 음료 20% 할인을 해준다고 한다. 운수 좋은 날인가 생각하기 무섭게 곧 초등학생들이 견학을 온다고 해서 양해 부탁드린다는 말을 한다. <운수 좋은 날>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정신과 근처에 머물만한 다른 카페도 별로 없고, 이 동네책방을 제법 좋아하므로 감수하기로 했다. 투썸플레이스 건물을 인수해서 자리가 푹신하고, 포트넘 앤 메이슨 차가 나오는 이 공간은 '평소에는'글을 쓰기에 참 좋으니까 말이다.
자리를 잡고 10분쯤 지나니, 아래층이 소란스럽다. 그들이 왔다. 최근에 경험하지 못했던 강렬한 자극에, 온 신경이 청각으로 집중된다. 담임선생님이 지친 목소리로 아이들을 다그친다. 신속하게 빈자리를 찾아 앉는 아이들. 글을 쓰는 바로 뒷자리에도 두 친구가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쩌면 몰래몰래 내가 쓰는 글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의식 과잉일까? 원래는 뒤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긴장감에 사로잡혀 머리가 굴러가지 않곤 하는데, 안전한(?) 초등학생이라 그런지 글쓰기에는 별 무리가 없다.
어느덧 아이들의 이야기가 백색소음으로 느껴진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고요함 속에 타이핑 소리만 나던 공간은, 속삭임과 질문들로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다. 이어폰을 들고 왔으면 칼같이 귀에 끼고 소음을 차단했을 테지만, 지금은 오히려 본의 아니게 엿듣는 친구들의 대화가 들리는 게 즐겁다. 가끔은 이렇게, '노이즈 캔슬링'이 아니라 '노이즈 액티배이팅'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