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휴직'이 부러운 사람들

by 민트초코숲

주말 간 많은 지인들을 만났다. 학교 동기들, 동아리 후배들, 월 1회 만나는 독서토론 모임까지. 얼추 20명 가까운 또래들과 시간을 보냈다. 요 근래 이렇게 많은 사람과 마주친 것도,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다.


대부분 직접 말하거나, 건너 듣거나 해서 지금 나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이겨낼 수 있다는 응원을 보내는 사람, 그래도 지난번보다 밝아졌다면서 용기를 주는 사람, 우울하게 된 사연에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많은 힘이 되었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한 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휴직으로 회사를 쉬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이틀간 만난 이들 중 주 40시간 근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군가는 신입의 자리에서, 누군가는 조금씩 연차가 쌓이는 자리에서 끝없이 일을 해야만 했다. 특정한 직군들만 만난 것도 아니다. 일명 '사'자로 끝나는 전문직, 대기업, 스타트업 할 것 없이 모두가 피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아파서' 회사를 쉬는 것에는 위로와 공감을 해주었지만, 아파서 '회사를 쉬는' 것에 대한 부러움도 공존했다.


사실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휴직을 시작하고부터 느끼고 있었다. 한창 우울함이 컸을 시절에는, 내가 아닌 '휴직'에 관심이 집중된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 역시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제는 상태가 조금 나아져서 그런지, 그런 모습들이 이해가 된다. 나 역시 이유를 막론하고 누군가 회사를 오랜 기간 쉰다는 말을 들으면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는 사람들, 나아가 우리 세대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다들 멋지고 훌륭하게 20대를 보냈다. 꿈이 있었고, 노력했고, 누군가는 그 꿈을 이루었다. 다른 이는 비록 이루지 못하더라도 다른 길을 찾아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호소하는 것은 회사와 일에 대한 피로감이었다. 겨우 20명이라고 말하기에는, 세상이 그렇고 회사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씁쓸함이 느껴진다.


주말 간 모든 약속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마침 '슈카월드' 채널에서 우리나라 2030 세대의 자살률이 독보적이며, 떨어지지도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체감한 것뿐 아니라 이런 통계들까지 같이 보면,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힘들다는 것은 '참'인 명제에 가까워 보인다. 아파서 쉬는 게 걱정이 아닌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 아픈 사람에게도, 부러워하는 사람에게도, 모두에게 안타까운 일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온전하게' 감기와 싸운 한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