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다 실패다. 낭패다.
나이 서른여덟에,
지금까지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 나이에 맞지 않는 짝사랑을 시작하고,
짝사랑 또한 내 나이에 맞게 멋지게 하고 싶었다.
내 이기적인 감정에 치우쳐지지 않는
배려있는 짝사랑을 하고 싶었고,
어른스럽게 고백하고 싶었으며,
거절당한 이후라도 쿨하게 친구로 지내고 싶었다.
모두 다 실패했다.
예전 같으면 예전 같으면 이라고 시작되는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다 버리고,
나답지 않은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들과
생각들과 말들을 하면서,
내가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좀 더 어른스럽고 멋진 사람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깨 으쓱으쓱 우쭐대면서 나 되게 멋진 여자가 되었다며 자화자찬했다.
이 정도 고백이라면 아주 만족해! 라며, 라즈베리 빛 상상의 나래를 펼쳤더랬다.
확률은 정말 반반이라고 여겼다.
혹시나 당장은 날 거절하게 되더라도, 이 고백을 계기로 우리의 담백한 친구관계가 흐트러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주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만만했던 고백은 실패했다.
여자로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적으로 친구로서는 내가 정말 좋다고 그 말 한마디는 해줄 줄 알았다.
조금의 틈이라도 보였다면 거기에 기대어 또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나는 사랑 앞에선 자존심도 없고 포기를 모르는 여자니까.
고백의 대답이 Yes, No 두개였던게 아니었다.
그 단호한 한마디의 문장에는 Yes, 일 확률이 1도 없었다.
당황했던 그날 내가 몇 날 며칠 고민해서 적어 내려간 내용이 다 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나는 내 마음을 오롯이 전하는데도 실패했다.
내 마음이 진실되지 않아서 무겁지 않아서 거절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 거절의 방식으로 유추하건대,
내 마음의 깊이 또한 가볍게 여긴 것이 분명했다.
쿨하게 나와 마음이 같지 않을 수도 있단 걸 인정해야 했는데, 나는 하지 못했다.
그나마 억지로 입꼬리를 웃어 아무렇지 않게 말을 듣고 있는 것이 최선이었다.
고백에 대한 대답을 들은 날, 밤새 그 내용을 곱씹으면서 울분에 차서 잠을 자지 못했다.
'네가 원한다면 앞으로 안 봐도 괜찮고'라는 말 한마디에
어른스럽게 거절당해도 친구로 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실패했다.
분명 이 짝사랑을 시작했을 때는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고, 나중에 거절당하더라고
한 사람을 위한 이 마음을 가다듬고 행동하고 그 사람을 위하는 과정 자체가 내게, 내 연애 인생에 큰 도움이 되리라 여겼다.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양분 삼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서 더 좋은 여자가 되어서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실패를 밟고 일어설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 또한 실패했다.
남을 배려하는 짝사랑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내 착각 속에서 사랑을 피웠다.
고백 또한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내 감정에 취해 있었으며,
내 고백에 나름 진지한 거절의 답변 또한 괘씸하다 치부하고 받아들이지 못했고,
극복하지 못했고 상처 받았다.
그저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 없을 때까지 쏟아낼 뿐이다.
글로 쏟아내고 쏟아내고 쏟아내다 보면, 언젠가는 비울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