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바로 산.
나는 어릴 때부터 뚱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무표정은 무섭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감정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엄마가 말하길 내가 원래 어릴 때는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었는데, 할아버지가 “우리 손녀는 조금만 웃는 게 더 예쁘단다”라고 말을 한 이후로는 내가 잘 안 웃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 속의 나는 얼굴 살이 많이 보이지 않게 예쁜 척 미소 지은 사진이 많다. 그런데 요즘 산에만 가면 눈이 보이지 않아도 얼굴의 볼살이 가득 차 보여도 참지 못해 터져 나와 박장대소하는 사진이 많다. 같이 산을 다니는 동생들에게 “언니 산이 그렇게 좋아요? 늘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웃고 있어요.” 란 말도 많이 들었다.
언제부터 내가 그렇게 활짝 있는 힘껏 웃게 되었을까. 내가 산에서 이런 모습이구나. 다른 사람이 찍어준 다른 사람이 표현하는 다른 사람이 보는 나는 그런 모습이구나. 처음 산에서의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았다. 내가 언제부터 어떻게 그렇게 변했을까. 그동안의 등산 기록을 더듬어 봤다.
산을 다니기 시작한 것을 코로나 19 때문이었다. 10년 이일을 하면서 코로나 19 덕분에 시간이 많아지고, 많아진 시간을 견디지 못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등산이었다. 주 2회는 꼭 갔다.
다니다 보니 산은 참 이상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분명 산을 오를 때는 처음 가보는 산이 아닌데도 늘 처음처럼 힘들다. 힘에 부쳐 말할 틈도 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가뿐 숨을 몰아쉰다. 예전 같으면 곧 내려올 거 왜 굳이 힘들게 올라가냐 했을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왜 그렇게 산이 좋을까.
처음의 힘든 오르막길의 고비를 넘겨 정상에 오르면 내려오는 길이 그렇게 즐겁다. 온몸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이 나도, 내가 살아 있는 이유인 것처럼 그렇게 행복감이 가득 찬다. 그래서 그런지 쉽게 내 이야기를, 나를 표현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산에 오르고 내려올 때는 나도 모르게 내 마음 한 조각이 툭 튀어나온다. 내려오는 길 툭 던져진 내 마음 한 조각을 내보이고 나면 상대방도 응답하듯 자기의 마음속 한편을 내준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 안에서 공감받고 위로받으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럴 수도 있구나 라며 좁았던 내 시야도 탁, 트이는 기분이다.
그래서 산을 간다. 산에서는 나의 나이도 직업도 성격도 아무 의미 없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오롯이 나의 두 다리와 두 팔로 버텨야 하며, 그렇게 산을 오르고 나면 그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계속 산을 찾는다. 길에서 만나는 산도 사람도 내게 긍정 에너지를 주기에. 그 에너지로 무엇을 할지 설레이는 내가 좋아서,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픈 사람들이 있어서 나의 산행은 계속 될듯 하다.